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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흑인폭동 때 달란트 깨달아 정치가로 더 큰 꿈꾸고 있어”

 

강석희 어바인 시장 미국 성공기

2009년 05월 12일 14시 20분조회수:315
‘캘 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의 ‘버락 오바마’. 강석희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이 지난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미 〈LA타임스〉는 강 시장을 오바마 미 대통령에 비유하며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가전업체 영업사원 출신인 그가 거둔 쾌거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한인 1세대 최초 민선시장으로 주목받는 그를 지난 7일 오전에 만나 성공 비결, 포부 등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국회의원 중 일부는
사진 촬영 등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인다.
정치중심지인 워싱턴을 꼭 방문해
한인들의 권익 향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가 이끄는 캘리포니아는 늘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북으로 로스앤젤레스, 남으로 샌디에이고와 인접한 미국의 100대 도시 ‘어바인’은 민주당의 침투를 막는 보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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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 and Coffee 07.jpg by VOD Car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백 인 노령층의 비중이 매우 높은 이 지역 유권자들은 친 공화당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살기 좋은 도시로 소문이 나면서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들이 많이 몰렸다. 강석희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장은 공화당의 텃밭에서 작은 기적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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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 by babymellowde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지 난 1977년 미국에 건너간 한인 1세대인 그는 불리하리라는 예상을 비웃으며 작년 말 선거에서 상대당의 경쟁자를 누르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쉽지 않은 승부였다. 아시아계 후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이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강사장은 선거운동 기간 무려 2만여가구를 일일이 방문해 그들을 설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결국 강 시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전자제품 할인점인 ‘서킷시티’ 영업사원 시절 인생 경험이 성공의 자양분이었다고 승인을 분석한다.

Brown Skin + Heavy Coat + Backpack = ?
Brown Skin + Heavy Coat + Backpack = ? by drp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강 시장이 영업사원 시절 소비자들의 집을 방문하며 익힌 ‘30초 룰’은 유권자 공략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소비자들은 영업사원의 말을 30초 이상 듣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이 짧은 순간을 파고들 메시지, 그리고 전달 방식을 담금질해야 했다.

“당시를 되돌려 보면 저를 이끈 것이 바로 ‘달란트(운명)’가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와 영업사원으로 밑바닥 생활을 하다 결국 정치 무대에 진출한 인생역정이 바로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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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kor document by shapeshif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두 살 어린 신부와 결혼을 하고 지난 1977년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한창 혈기방장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였다.

첫 직장이 바로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한 전자제품 할인점인 ‘서킷시티(Circuit City)’였다. 주민들은 전자제품을 가가호호 방문판매하는 젊은 동양인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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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ox v2.0 (1 of 2) by pochacco20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아시아인들을 우습게 보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시선은 캘리포니아의 혹염을 잊게할 정도였다. 강 시장은 서킷시티 입사 4개월 뒤 판매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수위를 차지했다.

서 부 지역 사장이 영업사원 전원을 저녁식사에 초청해 콘테스트 결과를 발표하던 순간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당 2.5달러, 한 달에 400달러를 버는 영업사원 생활은 거칠 것 없던 청년이 겸양의 미덕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로 작용했다. 벼도 익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생면부지의 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고통을 감내한 강 시장의 경험은 훗날의 어바인 시장 당선을 예비하는 과정이었다. 명문대 출신의 젊은 영업사원은 “‘400달러’의 소중함을 이때만큼 절감한 적도 없다”고 회고한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들이 사탕수수밭에서 하층근로자로 일하던 고난의 땅이었다.

One and Two Half Dollars
One and Two Half Dollars by EricGjerde 저작자 표시비영리



개성상인의 둘째 아들은 수난의 미 한인사를 이처럼 새로 썼다. 서킷시티는 그가 훗날 정치무대에 데뷔하며 배워야 할 덕목들을 모두 배운 기회의 무대였다.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그는 유치원이 아니라 서킷시티에서 배운 셈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사건이 지난 1992년 터진 ‘LA폭동’ 사태였다. 폭도로 변한 흑인들은 로스앤젤레스 시내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 한 젊은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영되며 오랫동안 잠자던 흑인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Riot in Beijing – China
Riot in Beijing – China by croma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불 과 3년 전(1989년)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으며,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시기에 ‘불길’은 미국 내부에서 솟아오르며 엉뚱하게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인들을 집어삼켰다.

“텔레비전으로 로스앤젤레스 폭동 사태를 지켜보며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한인상가 750여곳이 화재로 전소되거나 치유하기 힘들 정도의 큰 피해를 봤습니다.”
경찰은 부유층 거주지역을 철통경비했으나, 한인상가는 관심밖이었다. 흑인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 배경이다.

한 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인정을 받고 고속 승진을 하며 아시아계 최초로 매니저가 된 그였다. ‘로드니 킹’ 사건은 그러나 미국 내 한인들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집을 사고 아이들 교육하는 재미에 여념이 없던 그의 삶도 바꾸어놓았다.

서킷시티 시절 고객이던 김기순 한미연합회 설립자는 그가 사회활동의 첫걸음을 떼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한미장학 재단의 이사로 참석해 한인사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 발굴의 소임을 맡긴 것. ‘래리 에이그런(Larry Agron)’ 전 어바인 시장은 그를 정치무대로 안내한 멘토였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결국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래리 에이그런 시의원이 바로 정치 초년생이던 제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


그레이트 파크 대역사는 大運될 것
어 바인시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두 배 규모인 ‘그레이트 파크(Great Park)’를 조성 중이다. 그는 “임기 동안 대단위 역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토로한다. 일생에 한번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라고도 했다.

Fenway Park
Fenway Park by werkunz1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번 방한길에도 국내 건설업체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의 참여를 적극 권유하며 이 프로젝트 알리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냐는 질문에 “꿈을 안 꾸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이번에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by quapan 저작자 표시



그는 한국 국회의원 일부는 워싱턴 대신 다른 지역을 방문하고, 사진 촬영 등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편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중심지인 워싱턴을 꼭 방문해 미 국회의원들과 한인들의 권익 향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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