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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자원의 보고 ‘동티모르’를 가다] 동티모르 현장르포

기사입력 2008-07-30 01:00 |최종수정2008-07-30 01:09


●“닭 울음소리에 눈 뜨면 사방이 천연자원 寶庫”

●도요타 자동차는 동티모르 거리를 석권하고 있다. 주행중인 프라도(PRADO), 캄리, 심지어는 도요타 마크가 찍혀 있는 유엔군 차량과 마주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딜리 중심가로 통하는 도로 주변은 시골 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저마다 리어카를 끌고 나와 옷가지에서 닭, 그리고 민속주, 과일, 스낵류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을 판매했다.

동남 아시아와 호주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 그리고 천연가스, 원유를 비롯한 풍부한 에너지 자원. 동티모르 사람들은 결코 평온한 삶을 즐길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370여 년간 이 땅을 지배하던 포르투갈은 지난 1976년 식민지 경영 포기를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포르투갈의 공백을 파고 든 인물이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이다. 공산주의의 복음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일부 국가들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던 국제 사회는 점령군을 방조했다. 수하르토는 자국민들을 단계적으로 이주시켜 아예 이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다. 

구스마오(현 총리)는 이 독재자의 전략을 무너뜨렸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는 이 나라 국민들을 격동시켰다. 다들 떠났지만 그는 남아서 싸웠다. 독립의 기틀을 다진 기념비적 해가 바로 지난 1999년이다. 그리고 유엔의 감시 속에 선거를 치르고 2002년 정부를 출범시켰다. 

신생 국가의 초대 대통령이 바로 구스마오 현 총리다. 지난달(7월) 16일, 오전 11시 동티모르의 관문인 ‘딜리’ 공항. 휴양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시간 반 가량을 날아온 비행기는 동남아 특유의 비취 빛 바다 위를 미끄러져 움직이는 듯했다. 하강하고 있는 기체의 왼쪽 창밖으로 꽉 찬 푸른색 바다가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내달리다 공항의 마지막까지 가서야 비로소 멈췄다. 활주로의 길이는 불과 1.8km. 박경진 우주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인천 공항 활주로가 4km 정도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제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딜리 중심가로 통하는 도로 주변은 시골 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저마다 리어카를 끌고 나와 옷가지에서 닭, 민속주, 과일, 스낵류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을 판매했다. 긴 막대기를 걸터 맨 어린 아이들이 차량에 접근해 과일값을 흥정했다. 한국의 겨울에 해당한다는 7월의 햇볕은 매우 따가웠다.

동티모르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우리 돈으로 어림잡아 50만여 원 정도. 그나마 해외 원조금액 등을 모두 합친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토종 기업 간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렵다. 노점상은 국민의 대다수가 실업자 신세인 이 나라의 자화상이다. 

사회 인프라는 더욱 열악하다. 딜리 시내에 은행이 고작 4개에 불과하며, 특히 해외에 ‘송금’을 할 수 있는 은행은 단 한 곳이라는 게 안대수 로고스 리소시스 과장의 전언이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딜리 대학은 우리나라의 웬만한 고등학교에 비해서도 규모가 훨씬 더 작다. 

고등학문기관이라기보다 기술 전문학교의 성격이 강하다. 오후 3시, 일행이 숙박한 ‘디스커버리 인(Discovery Inn)’호텔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닭이 울어댔다. “많은 나라를 가보았지만, 한국 식당이 단 한 곳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송기동 동일기술공사 사장은 적막한 거리 풍경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식당을 차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고 농담을 건넨다. 3층 이상 건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길거리를 다니는 외제차들이다. 도요타 자동차는 동티모르 거리를 석권하고 있다. 도로에서도 주행 중인 프라도(PRADO), 캄리, 심지어는 도요타 마크가 찍혀 있는 유엔군 차량과 마주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노키아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이 저마다 자사 제품을 선전하는 광고펜스를 세워두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상위 3% 정도는 상당한 구매력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박경진 우주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활동 배경을 이 같이 진단한다. 지정학적인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척이다.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에 불과하다. 현지 진출 기업들의 입장에서 동티모르는 동남 아시아 현지시장 공략의 ‘교두보’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시장에 거점을 일단 확보하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으로 이어지는 더 큰 시장을 파고들 수 있다는 얘기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호주’라는 광활한 아대륙 또한 지척이다. 2차 대전당시, 일본군은 동티모르를 연합군의 동남아시아 진공을 저지할 보루로 여겼다. 

또 형세에 따라 연합군 측의 뒷마당 격인 ‘호주’를 타격할 수 있는 ‘최전선’으로 높이 평가했다. 일본군은 2차 대전중 동티모르 사람 수만 명을 학살했다.

대통령궁도 중국이 지어줘

지난 18일 오전 11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딜리(Dili’) 시내. 이 곳은 청나라 말엽의 ‘동교민항’을 떠올리게 한다. 동교민항은 북경 천안문 광장 옆으로 펼쳐져 있는 당시의 외교타운. 20세기초, 구미 열강의 대사관이 집결해 있던 동교민항은 강대국들의 중국 경영의 전진기지였다. 딜리도 요즘 브라질, 호주, 미국을 비롯한 각국 이해 다툼의 각축장으로 바뀌고 있다. 브라질, 태국, 베트남, 중국, 호주를 비롯한 각국 대사관이 도로를 끼고 좌우로 나란히 도열해 있다. 호주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총을 한편에 늘어뜨리고 해안가를 순시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동교민항에서 8개 연합군에 자국의 수도를 내주며 치욕을 맛보았던 중국은 요즘 이곳에서 단연 ‘태풍의 눈’이다. 동티모르 정부를 상대로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동티모르 대통령의 공관을 단돈 한 푼 받지 않고 짓고 있다. 

시내에서 가장 화려한 축에 속하는 외교부 건물도 중국측 작품이다. “공짜로 건물을 지어주는 것은 사실 손해 볼 것이 없는 카드입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건설업체에 일감을 맡기면, 이 건설업체는 임금이 싼 중국 근로자들을 대거 현지에 불러 공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현지 근로자들로 일정 부분 채용해야 하니 고용 유발 효과도 있다. 더욱이 자재도 대부분 본국에서 가져온다. 사실상 자국 건설업체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셈이다. 동티모르 정부에 생색은 생색대로 낼 수 있고, 실속도 차릴 수 있는 ‘양수겸장(兩手兼掌)’의 카드이기도 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딜리 시내의 번화가에는 한자 간판을 내건 중국인 운영 ‘점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딜리 시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도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 소유라고 하니, 일찌감치 동티모르를 성공적으로 파고든 중국인들의 발빠른 대응이, 그저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한국 정부도 물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기증한 앰뷸런스도 이곳에서 환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시내 병원에서 한차례 이 앰뷸런스를 본 적이 있어요.” 

로고스의 현지법인 ‘EPC’ 소속의 외국인 여직원은 시내를 안내하던 중 이 같이 귀띔을 했다.

또 다른 한국인 직원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초 이 나라를 방문한 김병준 청와대 전 수석이 다리를 놓아 제공한 차량입니다. 당시에 유엔군 차량이 그가 탄 차를 좌우에서 호위하고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번에 동티모르를 방문한 기업인들은 이 나라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국 대사관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면 주무 장관을 비롯한 정책 결정권자들을 만나고 돌아갈 수도 있지 않았겠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와집 모양의 한국 대사관은 ‘망치질’이 한창이다. 입구와 지붕 쪽에서 동티모르 현지 근로자들이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고치고 있다.

구스마오 리더십 반전계기 될까

딜리 공항 출국장 면세점은 늘 휑하다. 하루에 한차례 운행하는 인도네시아 항공편이 전부인 이 공항을 이용하는 유동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빈 점포들이 좀처럼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공항 이용객들이 몰리는 곳은 유기농 티모르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유일하다. 

공항에는 본국으로 떠나는 유엔군들이 늘 북적거린다. 아직도 시내에는 유엔군 차량이 순찰을 돌고 있는데, 유엔군과 그 군속을 비롯해 약 3000명 가량이 현지에 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티모르 현지 진출에는 아직도 여러 리스크가 적지 않다. 천혜의 자원이 풍부하다지만, 이권은 호주나 인도네시아 업체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송기동 동일기술공사 사장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갈을 내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박경진 우주엔지니어링 부사장도 비슷한 견해다. 이제 첫걸음을 떼어 놓았으니 기회가 많지 않겠냐는 것. 

“구스마오 총리가 하루는 저를 불러 한국에 동티모르산 유기농 소를 판매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아 놀란 적이 있습니다. (토마스 계 로고스 회장)” 인도네시아의 폭정에 항거해 눈물을 흘리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던 구스마오 총리가 소고기 수출 아이디어를 짜내는 모습은 신선하다. 

지도층 인사들의 ‘눈높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와의 뿌리깊은 은원(恩怨)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보 전진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된 것도 호재이다. 

실권이 없고 허울뿐인 대통령 임기 만료 후 탈당을 한 뒤 야당을 단합시켜 총리가 되는 데 성공한 구스마오 리더십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인터뷰 | 박경진 우주엔지니어링 부사장■

“국제 공항 공사 한국이 수주할 겁니다”

박경진 우주엔지니어링 부사장은 공군 출신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항 전문가이다. 이번 동티모르 방문길에도 그는 세계 각국의 공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시종일관 전문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박 부사장의 이번 동티모르 외유는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내 시장은 공항, 항만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국내 프로젝트들이 일단락되면서 신규 발주가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은 인프라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박 부사장은 진단했다. 그는 이번 동티모르 방문길에 공항 부문을 담당하는 담당 국장을 만나 딜리 시내의 티모르 호텔에서 브리핑을 실시했다. 한 나라의 얼굴격인 공항이 국제 기준에 비춰 턱없이 비좁고 시설도 낙후돼 있어 확장 공사가 시급하다는 점을 지적해 그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귀띔한다. 

박 부사장은 동 티모르 측의 반응이 꽤 좋은 편이었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700억원대에 공사비를 동티모르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박 부사장은 아프리카 앙골라 공항 수주에도 나선 적이 있지만 막판에 물량공세를 펼친 중국에 고배를 마신 아쉬운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중국 정부가 앙골라 공항을 지어주고 20년 운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을 제시하자 앙골라 정부는 중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동티모르 정부가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동티모르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지금까지 닦아 놓은 기반 시설이 거의 없는 점이 호재다. 한국 건설업체가 일본의 90%에 달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사비는 더 낮고 중국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공사 품질이 뛰어나다는 점을 알리는 데 최대한 초점을 맞추었다.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거나,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데도 국제규격에 맞는 공항이 중요하다는 점을 집중 설득했다”는 박 부사장은 담장 국장에게 대안은 당신들밖에 없다는 식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동티모르 방문에 대해 한 가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담당 장관을 비롯한 결정 권한이 있는 인사들을 만나지 못해, 결국 가시적인 결과물을 들고 귀국하지 못한 것.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이 나라를 방문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해 볼 밖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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