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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 a History of the Automobile 상세보기
Jonathan Glancey 지음 | Carlton 펴냄
Company |자동으로 벨트 조이고 속도 줄이고 살아 움직이는 야생동물이었다
이코노믹리뷰|기사입력 2008-01-03 06:12 |최종수정2008-01-03 06:24


벨라 바레니(Bela Barenyi). 자동차 기술 개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천재 기술자이다. 지난 1940년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근무하던 그는 자동차 충돌의 충격을 흡수. 운전자를 보호하는 ‘크럼플 존(crumple zone)’을 창안해 자신의 이름을 세계 자동차사(史)에 남긴 주인공이다.차체는 무조건 강해야 한다는 상식의 파괴가 그의 장기였다. 하지만 창의적인 발상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최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안전 기술의 눈부신 발전상에 감탄을 발하지 않았을까. 중국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주하이.홍콩이 지척인 이곳에서 지난달 13일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주최의 안전 기술 세미나와 시승 행사가 열렸다. 사고 발발을 사전에 방지하는 선제적 대응 기술(pre-safe)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 박기자, 속도를 높일 테니 정신을 차리고, 차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 지를 느껴봐요.” 메르세데스벤츠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연구원인 ‘더크 오클’이 목청을 한껏 높인다. 지난달 13일 오후, 중국 광둥성 주하이 공항 활주로에서 진행된 시승 행사는 첨단 안전기술의 경연장이었다.

첫 번째 시승 차량에 올라 시속 200여㎞로 질주하자 안전벨트가 저절로 감겨든다. 그리고 좌석 시트가 몸을 좌우에서 감싼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 피해를 줄이는 것이 지금까지의 접근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안전기술은 이제 선제적 대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등 3개 나라말을 구사한다는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운전자의 감(感)의 한계를, 컴퓨터로 작동하는 전자식 기계 시스템으로 보완, 사고를 미리 막는다는 것. 시승 차량(S600) 계기판에 장착된 디스트로닉 플러스는 사고 예방의 주춧돌이다. 승용차가 한 대 끼어들자 계기판에 자동차 모양의 물체가 바로 잡힌다.

그리고 안전벨트가 저절로 몸을 휘감는다. 앞차와의 거리가 더욱 줄어들자 경보와 더불어 차량 속도가 감소한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야생동물을 떠올리게 한다. 곧이어 백미러 한 구석에서 점등되는 붉은 불빛. 사각 지대에 위치해 운전자가 살필 수 없는 차량의 접근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바로 ‘블라인드 스폿 어시스턴트(Blind Spot Assistant)’ 기능이다. 오후 2시, 바스 플러스(BAS Plus: Break Assistance System)가 장착된 차량(S350)에 탑승했다. 활주로를 십여 초 가량 달리자 갑자기 전방에서 어린아이 모양의 형상이 튀어나온다.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힘껏 밟았으나 이미 이 표식을 지나쳐 버린 뒤다.

80km로 내달린 후의 급제동이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대형 사고가 불가피했다. 두 번째 주행에서는 바스 플러스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같은 속도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자 이번에는 승용차가 사고 지점 4m 전방 앞에서 정확하게 멈춰 선다. 작동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차 앞에 설치된 레이저를 쏘아 어린아이와 차량의 거리, 그리고 80km로 내달리는 자동차를 세우기 위한 브레이크의 압력을 계산한다. “전문가들이 독일의 교통 사고 현장을 조사해보니 여성들은 대개 브레이크를 약하게 밟아, 피할 수도 있던 사고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테스트 드라이버의 설명이다.

남성들은 자신의 운전능력을 과신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으로 사고 가능성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용처는 다양하다. 주택가 도로에서 공을 좇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적재화물을 종종 고속도로에 떨어뜨리는 화물 트럭에 대비한 안성맞춤형 장비다.

차 세울 수 있는 브레이크 압력 계산

차량의 앞뒤에 각각 4개씩 장착돼 있는 레이더 시스템이 사고 예방의 주춧돌이다. 운전자의 눈에 비유될 수 있는 이 장비는 항상 운전자 주변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리고 운전자의 순간 대응만으로 사고를 피하기 힘든 상황에서 수호천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도 차량의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또 다른 핵심 장비. 오후 3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날아온 테스트 드라이버는 운전대에 한 손가락만 걸친 채 물로 흠뻑 젖은 곡선 주로를 솜씨 좋게 움직인다. 코스주행을 한 차례 마친 뒤 그는 이 장치를 껐다.

그리고 같은 코스를 재차 달리는데, 승용차가 한쪽으로 밀려나가며 중심을 잡지 못한다. 급기야는 빗길에 미끄러져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더니 도로에서 이탈했다. “자동차는 단순히 운전자의 의지대로만 움직이는 기계 덩어리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야생 동물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본능적인 대응(instinctive vehicle response)을 할 수 있는 똑똑한 지능형 도우미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시승회에 앞서 안전 기술 교육을 담당한 리처드 크뤼거 메르세데스벤츠 안전담당 매니저의 설명이다. 안개가 끼거나 비나 내리는 날이면 빛의 세기와 투사 범위를 달리하는 헤드 램프, 야간에 보행자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투시 장비, 부피는 작으면서 효율은 높은 LED램프도 안전 주행의 또 다른 주춧돌이다.

운전대 진동으로 경보 발할 수도

미래형 차량 개발도 진행형이다. 중앙 차선을 침범하는 운전자는 종종 대형 사고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 이들을 상대로 운전대의 진동으로 경보를 발하는 차량도 개발 중이라고. 운전자가 졸음 운전으로 진동을 느끼지 못할 경우 계기판에 내장돼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차량을 원위치로 다시 돌려보낸다.

속도 제한을 비롯한 주변의 교통 표지판 표식, 신호등의 신호를 파악하는 일은 기본이다. 자동차들의 상호 교신시스템도 개발중이다. 교통 혼잡, 사고 현장 관련 정보를 공유하거나, 통신을 통해 차량 간 충돌 사고를 미리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50년대부터 안전 기술 개발을 선도해왔다. 충돌 사고의 충격을 흡수하는 크럼플 존(crumple zone), 그리고 ABS 등은 모두 이 회사의 작품이다. 자동차 사고 현장에 전문가들을 파견해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반영해왔다. 현재 자동차 안전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인력만 350여 명.

세계 최대 규모다.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가 10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 분야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회사가 안전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배경은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신흥 시장은 양날의 칼이다. 연간 사고 건수의 20% 정도가 중국과 인도 두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 이 지역의 자동차 보급 대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점은 기회이지만,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위기이다. 차량의 안전성이 브랜드 가치를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후발 주자들이 격차를 점차 좁혀오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 기술은 경쟁 기업들을 멀찌감치 따돌릴 비기(秘技)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사의 크뤼거 안전담당 매니저는 “지난 70년대 안전벨트를 연구하던 연구원들은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자, 스스로를 충돌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눈물겨운 개발기를 털어놓기도.

또 다른 관계자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는 “첨단 기술이 한국에서는 안전법규 미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현대기아차의 기술 개발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며 언짢은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주하이(중국) =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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