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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Ⅲ 동서양 고전전문가 특별 대담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9-20 22:21 | 최종수정 2007-09-20 23:12

“국가나 기업이나 조조와 케사르가 필요할 때”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칠 수 있다.’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나라의 개혁을 주도하며, 훗날 중국대륙 통일의 기틀을 놓은 변법개혁가 공손앙의 오만함을 질타하며 유학자인 조량이 던진 경고이다. 역사는 통찰력의 광활한 수원지이다. 그래서일까. 미래에셋 임원들은 요즘 역사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다. 대학 시절에도 잘 펼쳐 들지 않던 서양사를 훑어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스페인, 네덜란드를 비롯해 세계 역사를 주름잡았던 유럽 패권 국가들의 역사에서 21세기 경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영의 노하우를 파악해보라는 이 회사 박현주 회장의 특명에 따른 것이다. ‘대국굴기바람’이 제조업체를 한바퀴 돌아 금융사를 강타한 셈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비단 한국 기업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손자병법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전언이다. 진원지는 중국 경제의 부상과 더불어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는 중국의 경영대학원. 불확실성의 시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나 지도자들의 무용담은 경영자들에게 앞날을 예측하는 통찰력의 자양분이자, 현실을 반추해보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로마사 전문가인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 동양 고전전문가인 신동준 21세기 정치연구소장의 추석특집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13일 오후, 여의도에 위치한 딜로이트컨설팅 본사 회의실에서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이번 대담은, 리더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기자의 원론적인 질문으로 긴 여정을 시작했다. 〈편집자 주〉

【조조 VS 케사르】
● 조조 | 전략가이면서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조조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 케사르 |루비콘 강을 건널 정도로 결단력이 있었던 케사르.
그러나 변화를 주도하다 귀족세력에 살해당했다.



“로마는 패자를 자신의 공동경영자로 삼는 유례 없는 전략을 창안해냈습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의 칸나에에서
단 한 번의 전투로 로마군 7만 명을 궤멸시켰습니다.
하지만 로마공동체를 이탈한 동맹국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김경준-

“동양에서도 성공한 군주들은 왕도와 패도를 겸전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한선제 같은 인물이 대표적 실례입니다.
인간은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습니다.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의 인의만으로는 결코 조직을 이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신동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리더에 대한 관심들이 무척 높습니다. 리더는 어떤 존재라고 보십니까.

김경준: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역할은 ‘고스톱’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추석 때 모여서 패를 돌리는 그 화투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웃음) 구성원들을 상대로 지금이 앞으로 나아갈 적기인지(Go), 아니면 멈춰야 할 때인지(Stop)를 알려준다는 뜻이죠.

▶경영도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뜻인가요. 도요타가 적절한 시기에 렉서스를 미국시장에서 선보인 것처럼 말입니다.

김경준: 결단을 내리는 일의 고통은 무엇에도 비유하기 어렵습니다. 리더가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정확히 간파하는 통찰력을 소유하지 못했을 때, 구성원들은 불안해 지기 마련입니다. 리더의 자리라는 게 그래서 외로운 것 아니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케사르에 패한 것도, 그수하들의 운명이 엇갈린 것도 통찰력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리더는 진퇴의 때를 본능적으로 간파해야 합니다. 케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사실상 접수한 것처럼 말입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분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물의를 빚은 일도 결국 진퇴의 묘를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동준: 김승연 회장은 유비의 처세를 배워야 했습니다. 이 장면을 한번 떠올려 보시죠. 유비는 임종을 앞두고 제갈량을 불러 탁고유명을 남기게 됩니다. 아들인 유선의 보필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유선이 지도자로서 성에 차지 않을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해도 좋다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이 유언을 곧이 곧대로 믿을 신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조운이 전쟁터에서 아두(유선의 아명)를 구해 왔을때, 그는 아이를 내던져 버립니다. 유능한 장수를 잃을 뻔했다는 제스처였습니다.

하지만 유비처럼 자기 자식을 애지중지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유비는 눈물을 잘 흘려 천하강산이 울었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김 회장이 유비의 후흑술의 십분의 일만 배웠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겠습니까.

▶유머경영이나 감성경영만으로 조직을 유지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이치를 꿰뚫은 인물로 누가 있습니까.

신동준: 조조입니다. 그는 전략가이자 애민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전투에서 거의 패한 적이 없습니다. 손자병법 해설서 가운데 조조만큼 뛰어난 각주를 단 인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철저한 왕패 병용론자이기도 했습니다.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동양에서도 성공한 군주들은 왕도와 패도를 겸전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한선제 같은 인물이 대표적 실례입니다. 인간은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습니다.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의 인의만으로는 결코 조직을 이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리더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서양사에 등장한 지도자 가운데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간파하고 있던 인물로는 히틀러가 있지 않습니까.

김경준: 히틀러 라니요.(웃음) 제가 보기에는 로마의 종신독재관이었던 케사르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 운영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다 암살당하는 비운의 사나이이기도 합니다.

그는 갈리아를 정벌한 뛰어난 장군이자, 루비콘강을 과감히 건넌, 결단력 강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조그만 도시국가가 주변 국가들을 활발히 정벌하면서 사회 시스템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가 커졌죠. 하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로마 원로원은 이러한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았습니다. 케사르는 시대적 소명을 간파하고, 변화를 주도하다 귀족세력에 결국 살해당하고 맙니다.

▶중국도 요즘 동양고전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죠.

신동준: 손자병법을 경영학 교재로 활용하는 중국 경영대학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의 경영대학원들이 미국의 명문 기관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위치를 점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손자병법의 원리를 적용한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삼국지도 경영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 국내에서도 등장했죠. 최근에 논어 경영을 주제로 다룬 이대교수도 나왔죠. 일본에서 손자병법이나 한비자 등을 연구한 저술 발표는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삼국 중 가장 활발한 편이라고 할까요.

▶미래에셋에도 대국굴기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는데, 금융사와 역사서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김경준: 미래에셋 임원 조찬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박현주 회장이 특명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사와 경영을 하나로 꿰는 임원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라는 내용인데, 로마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영고성쇠의 비밀을 경영자의 시각에서 분석하라는 것이었죠.

한국시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좁은 국내시장에서 안주하다 보면 더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회사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을 파악하고, 맞춤형 인재운용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역사에서 길을 찾는 이유죠.

▶금융사가 서유럽 역사서에서 어떤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신동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 청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을 읽어보세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로마시대에서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대통령(President)과 왕(King)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서는 사람을 파악하는 좋은 텍스트입니다. 경영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고, 현지인들의 정체성을 알려주기로는 역사만 한 것이 없겠죠.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한나 아렌트·마키아벨리의 이름이 등장한다. 서구사회는 마키아벨리 이후 정치학에서 윤리학이 분리되며 탈이념적이고, 실천적인 기풍이 확산돼 나갔지만, 동양사회는 거꾸로 성리학의 득세로 정치영역에까지 윤리학이 침투하며 사변적인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

국내 학자들은 물론 가장 실용적인 사고를 한다는 기업인들조차 원리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데 이는 모두 조선사회를 풍미한 성리학적 사고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국내 재계를 휩쓸고 있는 사회공헌 바람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성리학적 사고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김경준: 사회공헌이 대표적인 실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인들은 주로 산업현장에서 그 필요를 느껴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사변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도 볼 수 있겠죠. 하나의 트렌드가 뜬다 싶으면 죽기 살기로 따라갑니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인보다 더욱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성리학적 전통이 있어서인지 원칙에 대한 경도가 심한 편입니다. 원론적인 얘기만 나오면 더 빨리 수입하고, 더욱 맹렬하게 실천합니다. 성리학을 중국에서 수입한 조선의 선비들이 명이 망하자 소중화를 자처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디슨이 창업한 글로벌 기업 GE부터 지멘스까지, 사회공헌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대세가 아닌가요.

김경준: 기업의 책무는 역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윤을 많이 창출해 불우이웃돕기를 비롯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고객을 위해 서비스나 재화를 만들어 이윤을 내는 것이 기업입니다.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책임의 실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 은행에 이자를 지급하며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지급합니다. 또 정부에는 세금을 내지 않습니까.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본질과는 상관없는 추상적 가치에 매몰되지 말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한물 간 것으로 평가받는 미래학자 방문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외국 문물의 동경은 한국인의 천형인가요.

신동준: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를 기점으로 신학에서 철학을 떼어냈는데, 송대로 오면서 동양에서는 성리학이라는 고도의 사변적인 윤리학이 정치영역을 파고들며 정치를 윤리적으로 녹여버렸습니다. 이 때부터 정치는 동양에서 상실돼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유림들이 아직도 원리주의적 색채를 띠는 것도 이 영향이라고 봅니다.

기업인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봅니다. 정신적 사조에 대해서 이런 경향들이 매우 강한 편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다시 무서운 기세로 살아나고 있지 않나요.

신동준: 일본은 한국을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였지만 중국과 한국처럼 관념론에 경도되지 않았습니다. 이토 진사이는 고학에 주목했습니다. 인간을 중시하던, 공자 시대의 전통적인 유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윤리학이 가미되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공자 유학이 일본 명치유신의 사상적 기반이 됐어요,

19세기 중반 개화에 성공해서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에서 동양 고전과 관련한 경영학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실사구시적인 학풍이 얼마나 강한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화혼양재를, 중국이 중체서용을, 우리가 동도서기를 주창했지만, 과거 두 나라는 망하고 일본은 흥한 배경을 따져봐야 합니다.

▶한 일본인 컨설턴트는 기자에게 도요타 경영의 요체로 나고야의 장인정신을 꼽은 바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일본정신이 아닌가요.

신동준: 도요타가 강한 것도 바로 지도자의 리더십과, 일본 국민 특유의 정신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토 진사이는 맹자를 좋아하면서도 사변적인 이론을 거부했습니다.

일본에는 기업의 역사가 200년 이상이 된 곳들이 있습니다. 이후 서구의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기업 문화를 구축했지만, 우리 기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고유의 정체성은 무엇일가요. 피히테가 말한 독일인의 정신 같은 것 말입니다.

김경준: 포스코와 현대차, 그리고 현대중공업, 삼성전자를 비롯한 굴지의 기업들이 등장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말입니다. 한국인의 피 속에 과거 대륙을 호령하던 웅혼한 기상이 내재돼 있다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지 않을까요. 글로벌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우리의 DNA 속에 고유한 무엇을 더해야 합니다. 도요타만 따라해서는 도요타의 아류가 될 뿐입니다.


한민족 고유의 특성을 간파하고, 기업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도요타를 누를 수 있는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대담자들의 목소리는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3년간의 칩거기간을 거쳐 대하소설 《대발해》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은 김홍신 작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논의의 물꼬를 아시아적 가치로 돌렸다.


▶지난 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을 놓고 논란이 한 차례 촉발된 적이 있습니다만, 아시아적 가치가 과연 여전히 유효한 걸까요.

신동준: 서구적 가치가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멘토 미니스터,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보세요. 그들은 서구의 전통으로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유형의 지도자들입니다. 이광요나 후진타오는 사실상의 황제이며, 푸틴은 짜르입니다.

이들 국가의 경제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근대 이후에 중앙집권제도가 등장했지만 동양에서는 진나라 때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제,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관료조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서구의 제도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시각은 단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맹아는 유럽에서 싹트지 않았습니까. 각종 첨단 경영이론들도 그쪽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신동준: 일본 학자인 무라카미 야스스케가 저술한 《반고전의 경제학》이라는 저서를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특정단계에 등장하는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죠. 로마시대 말기나 중국 송대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자본주의의 패턴이 이미 있었다는 겁니다.

중국도 춘추시대 말기에 도주공으로 불린 범리가 있었고, 전국시대에는 진시황의 아버지로 알려진 여불위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거상으로 활동했습니다. 송대에도 금이나 요의 막강한 무력 앞에 200여 년간이나 버틸 수 있던 것도 도자기나 차·비단을 수출해 막강한 돈을 벌어들여 세폐를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럽자본주의 태동의 도화선 역할을 하는 계몽주의도 동양의 고전들이 한몫을 한 것은 아닌지요.

신동준: 15세기부터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고전을 활발히 번역해 유럽에 꾸준히 소개를 했습니다. 번역물들이 200년에 걸쳐 꾸준히 유럽으로 유입되었으며, 17세기 계몽주의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전통에는 원래 자유·평등, 그리고 박애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화이트 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서양의 계몽주의도 비슷합니다.

▶동양에 한걸음 뒤처져 있던 유럽이 아시아를 제치고 앞장서 나가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경준: 여기 한 인물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입니다. 집안도 별볼일이 없었고 당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한나 아렌트’는 그를 극찬했습니다. 유럽 지성사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인물로 치켜세웠습니다.

윤리와 정치를 분리한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마키아벨리 이후 서구사회는 정치영역에서 윤리를 떼어냈습니다. 서양 정치학 자체도 마키아벨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인간을 중시한 서양, 그리고 사변에 치우친 동양의 선택은 19세기 아편전쟁에서 그 성패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죠.

▶중국에서도 최근 손자병법을 경영학 교재에 활용하는 경영대학원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식 경영에 눈을 뜨고 있다는 방증일까요.

신동준: 손자병법은 최고의 교재이기도 합니다.

손자병법은 정치와 경제·철학 등을 포괄하는 종합 사상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일본처럼 자국 고유의 경영방식을 확립해 나가는 단계라고 봅니다. 중국의 경영대학원이 미국의 MBA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클라우제비츠나 조미니 같은 탁월한 군사 전략가들은 서구에도 많습니다. 춘추시대의 케케묵은 전략서를 펼쳐들 이유가 있나요

신동준: 물론 유럽에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있습니다.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하지만 손자병법의 심오함에 비하면 중학생과 대학생 정도의 수준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한국식 경영을 논하기에 너무 이른 게 아닐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형과 아우가 경영권분쟁을 벌이는 추태가 여전합니다.

신동준: 재벌 기업과 오너, 그리고 전문경영인등을 분석하는 틀은 동양 고래의 통치학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너들의 행태는 제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폐하거나 살해하는 패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위해서였습니다.

황제당과 태자당의 다툼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늘 있었습니다. 인간 내면의 본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 수용에도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신동준: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이나 범수, 그리고 장의 등은 모두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재상의 자리에 오르지 않습니까. 우리 기업들은 금기가 많은 것은 아닐까요. 글로벌 인재를 논하기 앞서 한국의 인재들에게 더 넓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영자들은 조조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는 인재 관리면에서도 탁월한 리더였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위충이라는 인물을 수차례에 걸쳐 용서합니다. 난세에 능력있는 자들이 강한 편에 붙어 일신의 안전을 보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뒤에도 원소진영의 기밀문서들을 모두 태워버립니다. 간첩행위자 적발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죠.

▶동서양의 뛰어난 지도자들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로마도 적군마저 포용하는 개방성으로 유럽 제패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김경준: 고대세계에서 강자는 전쟁에서 패한 적성국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패전국은 식민지로 편입되고, 독립된 공동체의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습니다. 패전국의 구성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패자를 자신의 공동경영자로 삼는 유례없는 전략을 창안해냈습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의 칸나에에서 단 한번의 전투로 로마군 7만 명을 궤멸시켰습니다. 하지만 로마공동체를 이탈한 동맹국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개방정책이 한몫을 했던 겁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로마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죠. (웃음)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 개혁으로 부국강병, 그리고 훗날 중국 통일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뛰어난 전문가, 그리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관중을 발탁해 전권을 부여했던 제환공, 그리고 상앙의 지지자였던 진효공과 같은 지도자가 이번 대선에서 등장할까. 토론의 초점을 올해 대선에 맞추었다.


▶참여정부를 한 왕조를 일시적으로 멸하고 신을 세운 왕망 정권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신동준: 왕망은 극단적인 이상주의자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 백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손님들을 초대하고 아내에게 하녀들의 옷을 입혀 접대를 하게 합니다. 또 여자 노비를 희롱한 아들에게 자결 명령을 내리죠.

한 왕조의 수탈에 찌들어 있던 백성들이 왕망의 이러한 모습에 환호를 했고, 왕조 교체의 든든한 주춧돌이 됩니다. 국호 신(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혁에 대해서도 과잉 의욕을 보여줍니다. 민심을 확보해나가는 과정 등이 일부 닮아 있으며, 개혁 지상주의에 함몰된 것도 비슷하지요.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왕망이 불과 수 년 만에 허망하게 실패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신동준: 경제 정책의 실패 탓이 큽니다. 화폐개혁을 단행했으나, 백성들의 생활고를 덜어주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키고 말았습니다. 경제가 문제였던 겁니다. 왕망은 자신이 해방시켜준 노비들의 반발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의 개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고 방법 또한 과격했습니다.

왕망과 달리,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이 그의 실각 후에도 그 골격을 유지할 수 있던 배경은 현실을 토대로 입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안석은 송나라 유학자로는 드물게 법가사상에서 개혁의 단서를 얻었습니다.

▶왕망과 같은 유사 지도자들을 구분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김경준: 추상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위정자가 추상적 개념을 앞세워 정의를 독점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때 공동체는 다양성을 상실하고 전체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로마 황제들의 실천적인 구호를 돌이켜 보세요. 식량 그리고 안전의 확보입니다.

▶신동준 소장은 사람 냄새가 나는 지도자를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어떤 의미라고 봐야 합니까.

신동준: 왕망을 비롯해 거창한 사회변혁의 구호를 앞세운 이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이 드문 편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버스 피에르나 마라, 당통 등도 개인적 가치의 추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으나 결국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최고통치권자는 결코 이론가나 이념가가 되서는안됩니다.

대통령만은 학자들과는 달리, 통치이념을 놓고 목숨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마오쩌둥도 숱한 공산주의 이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통치사상은 모두 춘추좌전과 자치통감 등에서 얻은 선인들의 지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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