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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미래학자 로히트 탈와, 삼성의 미래를 말하다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8-15 11:15

“‘윈도XP’수준의 경영시스템 ‘비스타’로 업그레이드해야”




삼성그룹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가 싶더니, 탄력시간 근무제를 연구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대폭 확대하는 등 전방위적인 변화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후계구도 구축부터 지주회사 워밍업 설까지, 숱한 풍문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반도체사업의 부진이 이러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지만 영국의 미래학자인 로히트 탈와 박사는 이러한 시각을 거부한다. 변화의 조짐은 올해 초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 기업의 미래전략 담당자들을 만났을 때 이미 가늠할 수 있었으며, 일련의 변화는 이러한 고민의 후속조치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세계적인 미래전략그룹 패스트퓨처의 최고경영자인 탈와 박사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삼성그룹이 더 유연해져야하며, 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Proctor&Gamble)의 ‘개방형 혁신 시스템’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강점을 적극 수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은 뛰어난 리더와 우수한 인력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좀더 단호한 결정(tough decision)을 내려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해 삼성의 미래전략 부서 담당자들을 만나보셨는데,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삼성은 우수한 글로벌 브랜드, 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은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도 가장 우수한 인력들을 선발할 수 있겠죠. 지난번에 삼성직원들을 만났을 때 비슷한 인상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통찰력이 있으며, 능력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내면 깊숙한 곳의 욕구라고 할까요.

삼성을 지금보다 더 뛰어난, GE 같은 기업에 견줄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전략가들이 푸른 눈의 미래학자를 만나 털어놓은 마음속 고민이 궁금합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그들과 나는 서로 지구 반대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생각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삼성그룹이 좀 더 빨라져야 하며, 지금보다 더 글로벌화돼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 더 창의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습니다.하지만 수직적인 경영 시스템(hierarchial internal management sytem), 의사결정시스템의 한계도 분명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삼성은 요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부진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분석인데, 이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내가 만난 삼성의 전략 담당자들은 당시에도 이미 여러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삼성이 고난의 행군에 나서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복잡해 보이는 현상도 때로는 단순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조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입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제품 생산비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선택할지 아니면 가격은 비싸지만 특출한 제품을 만들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삼성은 반도체에 관한 한 전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이 전략은 위험합니다. 후발주자들이 상황을 역전시키고 가격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반도체 부문 수익률 하락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핵심 제품의 경쟁력은 흔들리고 있는데, 신수종 사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요.

핵심 제품의 경쟁력 쇠퇴라. 그것 참 심각한 문제군요. 하지만 세계 산업의 역사를 되돌아보세요. 모든 기업이 비슷한 상황을 끊임없이 겪습니다. 미국의 IBM이나 GE, 그리고 시스코는 이런 위기를 한 차례 극복한 경험이 있으며, 포드와 GM은 지금 겪고 있는 것이지요.

관건은 이러한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내부 시스템에 달려 있습니다. 삼성은 뛰어난 리더와 우수한 인력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좀더 단호한 결정(tough decision)을 내려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삼성의 위기를 언론에서 부풀린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반도체만 해도 하반기 실적 호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기를 겪는 기업의 담당자들이 흔히 겪는 오류가 있습니다. 마케팅을 제대로 하면 상황이 좀 더 호전된다거나,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면 현 위기를 쉽게 타개할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그들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영 시스템(Management system)입니다. 위기의 징후를 체질 개선의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핵심부문의 경쟁력 쇠퇴,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이 항상 그렇게 찾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래학자다운 해결책을 하나 제시해 주시죠. 가까운 장래에 블루오션으로 부상할 시장이 있을까요.

그런 분야가 있다면 제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위기탈출의 방정식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기존 분야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내일의 시장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옷이나, 인간의 몸에 부착하는 칩이 실례가 될 수 있겠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높은 이윤의 원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빨리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입니다.

루 거스너 IBM 전 회장은 부임 후 사내경영위원회를 해산했는데, 바로 이런 조치가 필요한 걸까요.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던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날렵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였지요. 이렇게 비유해보죠.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려면 휴대폰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용 컴퓨터를 비스타를 장착한 기종으로 바꾸듯이, 위기를 겪으며 기업 시스템을 한 단계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삼성은 내부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를 윈도XP에서 비스타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 변화하는 경쟁 구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운영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운영시스템을 ‘윈도XP’에서 ‘비스타’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설마 이 회사의 컴퓨터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겠죠?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수혈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절차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실행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얻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를 빨리 ‘프로토타이프’하고, 제품이나 서비스 혁신에 반영해나가는 속도가 중요한 것이겠죠.

프리미엄 항공서비스를 불과 9개월 만에 선보인 친구 분의 사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속도와 품질은 반비례하지 않습니까.

한 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삼성이든, LG든, 아니면 현대자동차든 상관없습니다. 만약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새 전략을 만들어내는 데 수년이 걸린다면 어떨까요. 생존할 수가 없을 겁니다.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확보하고, 제품을 출시하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방법은 무엇일까요. 핵심 사업 부문의 매니저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발상과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시장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결코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이 글로벌 기업이 인수합병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스코, 노키아, GE는 모두 기업 인수합병의 선두주자들입니다. 싹수가 엿보이는 기업들을 인수해 규모를 키우는 역량에 관한 한 초일류 선수들입니다. 삼성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보유한 작은 기업들의 지분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기업의 체질을 확 바꾸는 데도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발상이 자유로운 외부 기업들과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혀가다 보면 사내 벤처 운용의 노하우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확보한 기술과 상품을 흡수하거나 매각하는 건 삼성의 선택이겠죠. 인수합병에 좀 더 공격적일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혁신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루 거스너 전 IBM 회장 같은 거물급 기업인을 영입해 보는 방안은 어떨까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소니 회장이 외국인이지 않습니까.

루 거스너요? 그가 오려고 할까요. 매혹적이긴 하지만 반드시 적절한 대안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루 거스너가 90년대 IBM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지금 삼성이 겪는 위기의 처방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 리더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전반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고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확신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리더가 꼭 외국인일 필요는 없겠죠.

만약 당신이 이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당장 부임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나라면 외부 아이디어수혈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엄격한 기준을 세우겠습니다. 이 중 몇 % 정도가 상품화되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정하겠습니다. 또 특허 가운데 3년 내에 제품화되지 않는 것은 과감히 폐기처분하겠습니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러한 개방형 혁신 모델(open innovation approach)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경쟁의 심화입니다. 사내 연구조직을 외부의 두뇌들과 과감히 경쟁하도록 유도하세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는 많은 연구개발 관련 웹사이트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내 연구 개발 조직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과제를 올려 놓으세요. 그리고 이 둘 중 해결책을 좀 더 빨리 제시한 쪽에 지원을 몰아주세요.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고, 신상품 성공률을 끌어올리며, 이윤을 높이는 일석삼조의 방안입니다.

개방형 혁신 모델을 도입해서 성공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꼭 한 기업의 사례만 들어야 하나요. 단연코 P&G입니다. 이 소비재 기업은 지난 90년대 말 심각한 위기를 겪습니다. 스스로를 개방형 혁신 기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화위복이었던 셈이지요. 신제품 아이디어의 절반을 회사 밖에서 수혈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바로 C&D(Connect & Development)로 불리는 모델입니다. 그리고 ‘유즈 잇, 루즈 잇(use it or lose it model)’으로 불리는 특허 처리 시스템도 운용하는데, 보유 중인 특허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과감히 외부에 매각했죠.

잭 웰치는 부임 중 주가를 40배 가까이 끌어올렸는데요. P&G의 시도가 성장률이나 주가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제품 개발 시간은 절반으로 줄이고, 제품 성공률과 주가는 각각 두 배로 끌어올렸습니다.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물론 뛰어난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데 공을 세운 직원들을 상대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주었습니다.

삼성을 필두로 한 한국 기업들이 다시 한번 체질개선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 한 가지만 지적해주시죠.

숲속에 있다보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업가 정신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중요하다고 해서 현실에 매몰돼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가장 큰 시장의 경계 너머를 쳐다봐야 합니다. 앞으로 20년 안에 떠오를 50여 개의 시장을 끊임없이 떠올려 봐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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