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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8-09 06:54



“관리의 삼성 버리고 GE·IBM방식으로 이동중”

엠넷(M-net).’ 삼성그룹이 운용하고 있는 글로벌 마케팅 프로그램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의미를 해독하는 툴을 제공한다. 최근에 이뤄진 지역별 투자 결과는 물론 가상(what-if) 시나리오별로 편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도 모니터상에서 돌려볼 수 있다.

효율적 마케팅을 위한 주춧돌이다. 이 회사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세계 각지의 상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본다. 경쟁사와 진검승부를 벌이기 전 가상의 공간에서 예산을 집행해보고 시행착오를 줄여나간다. 심시티 이용자들이 도시를 운용해보며 정책 노하우를 터득하는 이치에 비유할 수 있다.

삼성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활동 범위도, 사고 영역도 전 지구적이다. 이런 삼성그룹이 최근 다시 한번 변화의 고삐를 바싹 죄고 있어 화제다. 변화의 진원지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계열사. 캐시카우(cash-cow. 화수분) 역할을 해온 반도체 사업부문의 수익률 급락이 변화의 방아쇠를 당겼다.

변화의 폭과 방향을 가늠하기는 결코 간단치 않다. 반도체 사업부문 운영을 이원화하는가 싶더니, 삼성전자의 총괄사장을 다른 전자 계열사의 사업부문장으로 겸임 발령하는 등 방향을 종잡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위기의식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무수한 뒷말이 오가는 배경이다. 하지만 무질서해 보이는 이러한 변화에도 규칙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일부 언론의 지적과 달리, ‘충격 요법’은 결코 아니며, 정밀한 프로그램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변화의 종착역은 90년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던 IBM 혹은 초우량기업 GE다.

경영 위기를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한 기업들이다. 이질적 사업 영역을 서로 분할해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라는 일각의 주장을 거부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합의 이념으로 비교 우위를 창출해 낸 기업들이다. GE에서 지난 30년간 그룹 전략을 담당한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그룹 회장을 인터뷰했다.

GE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략가이다. 또 최근 삼성전자를 향해 독설을 쏟아부은 김병윤 두레컨설팅 컨설턴트도 만나보았다. 최근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제목의 삼성전자 비판서를 낸 그는 닦고 조이는 문화가 부메랑이 되어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양국 전문가의 이원분석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적극적인 인수 합병이 드문 이유는 관리전문가들의 통제지향적 사고 탓이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탈출구는 보일 것이다.”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장
“닦고 조이는 문화가 결국 발목 잡아”

귀밑머리를 짧게 치켜 깎았다. 둥근 안경테에 작은 체구.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둥글둥글한 인상이다. 김병윤 두레스경영 연구소장. 삼성전자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했다. 한 시간 남짓 한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삼성그룹 위기의 배경은 이렇다.

조직문화가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최첨단 글로벌기업에 걸맞게 인적구성이나 기업문화가 탈바꿈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능력있는 전문경영인들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기업인 삼성이 신수종 사업 발굴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란 게 그의 지적이다.

김씨는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오직 급했으면 상반기 그룹 전체의 실적을 같이 발표했겠냐”고 기자에게 반문한다. 반도체 부문의 수익률 급락으로 불거진 위기론을 잠재우기 위한 ‘물타기’라는 시각이다. 창조경영은 결코 말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기풍이 정착될 때만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 적극적인 인수 합병이 드문 이유도 매사 닦고 조이는 관리전문가들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입사한 삼성맨들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는 점도 아쉽다고 한다.

해외 유명 MBA출신 등 배경 좋은 인재들을 선호하다 보니,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자신도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 탓에 결국 퍼듀대 경영대학원에서 학위를 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고객들을 직접 대하는 현업 부서조차 동맥경화에 빠져 있는 점도 위기의 징표이다.

노트북 컴퓨터 수리를 직접 맡겼으나, 고장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 십여만원에 달하는 부품교체 비용만 물었다는 경험담도 털어놓았다. 삼성그룹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병목현상에 시달리는 조직치고는 최근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신속하다. 변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그룹회장
“GE식 통합모델이 위기탈출 해법”

삼성그룹이 최근 GE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로 해 화제다. 최치훈 GE에너지 아시아태평양총괄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 GE는 삼성은 물론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로망’이다. 매년 8%에 달하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니, 성장전략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더욱이 삼성과 GE는 폭넓은 사업 군을 이끌어가고 있는 복합기업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그룹 회장은 GE에서 지난 30년간 전략을 담당했던 전략통이다. 경영의 신으로 통하는 잭 웰치는 물론 보치(Borch)를 비롯한 전임 회장들의 경영 스타일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지난 2001년 GE를 그만두고 자신의 이름을 딴 컨설팅 그룹을 창업한 그는 삼성의 최근 변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만 지난 2001년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 부임 초를 떠올려보라고 조언했다. 신임 회장이 새로운 비전에 따라 조직을 활발히 개편해 나가던 때이다.

삼성그룹과 GE의 상황은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 삼성은 화수분이던 반도체 사업 부문의 수익성 저하로, GE는 9.11사태 발발로 그룹 전체에 위기감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당시 “한 언론사에 신임 회장이 참조해야 할 전략방향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이질적 사업을 한 우산 아래 끌고 가기보다 그룹을 금융·기술, 그리고 나머지 부문으로 분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멜트 회장은 기업의 규모가 경쟁 우위의 원천이라는 소신의 소유자였다. 지역별 연구개발 조직조차 경쟁보다는 공통 목표를 향한 교류와 협력이 더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경영 전략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요소는 가차없이 바꾸었는데, 바로 ‘GE캐피탈’이 대표적 실례이다.

잭 웰치 시절 그룹 전체 매출의 40%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이 회사를, 그는 2개로 분할했다. 소비자 금융을 전담하는 ‘GE머니’를 별도 법인으로 설립한 것. “잭 웰치 시절, 권한이 커지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던 이 자회사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간 셈입니다.”

조직(GE캐피털)을 둘로 나누기도, 또 통폐합하기도 했지만 그 요체는 통제의 강화였다.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조직의 힘은 약화시키는 한편, 11개 사업부의 교류와 협력을 미세 조정했다. (박스기사 참조)

이질적인 사업부들을 마치 한 몸처럼 운용해 나가며 기술개발, 혁신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공동으로 주도면밀하게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던 셈이다. 그가 바라보기에 신수종 사업 선정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이 노련한 전략가는 즉답을 피한다. GE도 새로운 진출 분야에서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 IBM이 장악하고 있던 기업용 컴퓨터 분야에 진출했다 실패한 사례를 제시했다. 다만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용의주도함을 슬쩍 언급했다.

이 회사는 물 정수 사업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으며, 알제리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직(GE캐피털)을 둘로 나누기도, 또 통폐합하기도 했지만 그 요체는 통제의 강화였다. 힘을 행사하는 조직의 힘은 약화시키는 한편, 11개 사업부의 교류와 협력을 미세 조율했다.”

글로벌 기업, 통합모델 바람

“우리는 글로벌 통합기업으로 간다”

루 거스너 IBM회장이 지난 93년 부임해 처음으로 한 조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내 경영위원회(MC)를 해체한 조치였다. 분야별 최고 실권자들이 머리를 맞대 의사 결정의 리스크를 줄이자는 창설 의도는 훌륭했으나, 늘 그렇듯 기구 성격의 변화가 문제였다. 실력자들이 물밑 조율을 끝내고 합의만 하는 기구로 전락했던 것.

그는 회사 분할방안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온 투자은행 직원들도 모두 회사에서 내보낸다. 자사의 가장 큰 강점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회사의 규모와 더불어, 서로 이질적인 분야를 조율해 고객사들에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반영한 조치였다.

제프리 이멜트 GE회장도 비슷하다. 그는 잭 웰치 시절 비대해진 GE파이낸스를 분할했다. 평소 규모야말로 성장의 주춧돌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뒤엎는 조치로 해석됐다. 파이낸스가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다보니 통제가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로스차일드는 설명한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분권을 강조했으나, 실상 권력 누수를 막고 개혁의 고삐를 죄는 수순을 밟아나갔던 것. 권한의 집중은 이들 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상황 덕분에 가능했다. IBM은 그룹의 캐시카우이던 메인 프레임의 수익이 뚝뚝 떨어져 가던 상황이었으며, 제프리 이멜트는 취임한 지 불과 나흘만에 9.11사태가 터져 전세계경제가 급랭했다. 삼성그룹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도체 부문의 수익률 급락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고나면 발표되는 인사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지난 1일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박종우 사장을 삼성테크윈의 디지털 카메라 사업부문장으로 겸직 발령했다. 삼성테크윈은 조직을 주력인 카메라 사업부문과 정밀기계로 나눴다.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에 있는 개발부문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옮겼다.

또 이에 앞서 삼성SDI의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장에 삼성전자 기술총괄인 김재욱 사장을 임명했다. 삼성전자 사장들이 삼성테크윈과 삼성SDI의 핵심 사업을 총괄 지휘하게 된 것.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이 담당해왔던 메모리 사업부장직도 조수인 부사장에게 일임한 바 있다.

삼성이 지향해나갈 지점은 어디일까. IBM의 샘 팔미사노 회장은 자사를 세계 유일의 GIC로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통합된 기업(Globally Intergrated Company)의 약자이다. 각 지역 거점별로 가장 잘하는 분야를 담당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지역별 자회사들이 마케팅부터 판매, 생산 등을 담당하던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mpany)은 역사의 유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제프리 이멜트 GE회장도 11개 사업부문간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고 있다. 양쪽 모두 강력한 통제가 조직운영에 필수적인 구도인 셈이다. 박재흥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조직 전체를 통합의 시스템으로 보는 동양적 사고방식이야말로 경쟁우위의 원천”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의 통합바람의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의 움직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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