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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도시 슬럼화는 재앙의 전주곡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7-13 10:57


슬럼, 지구를 뒤덮다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 돌베개
2007년 7월 / 343쪽 / 1만5000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슬럼화 현상의 원인과 효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슬럼이 향하는 재앙적 수준의 종착점을 고발한 책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서울 구석구석의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숨쉬는, 아이들이 요리조리 뛰놀던 골목길이 서울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느 때면 울려 퍼지는 장사꾼들의 익숙한 쩌렁쩌렁한 소리도 골목길의 퇴장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골목길에서 희로애락을 벗삼아 살던 서민들, 골목길이 사라지면서 그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휘황찬란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다.

낡고 불편한 옛 것을 부숴 그 자리를 신식 콘크리트 건물로 깔끔하게 정리 정돈한다는 도시 계획, 단순하게 본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도시의 스카이 라인이 바뀌고, 우선 첫눈에 보기에도 말쑥하고 또 요즘 건물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어디로 가는가. 한쪽에서는 새롭게 재개발된 지역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 청약으로 시끌벅적하지만 원주민들의 상당수는 불도저와 용역 직원들에 맞서 보상과 이주 문제로 처절하게 싸운다. 서울의 발전은 이러한 과정의 끊임없는 연속이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슬럼화 현상의 원인과 효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슬럼이 향하는 재앙적 수준의 종착점을 고발한 책이다.

자본주의에 있어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슬럼은 국지적인 현상이며, 저개발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과정상의 고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신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인도나 중국, 남미의 비참한 슬럼 지역…, 이것이 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고 세계는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한다. 우선 도시 슬럼화는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규모와 인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현재를 기준으로 약 10억명이 슬럼 거주자이고, 전 지구의 하위 1/3이 하루에 섭취해야 할 칼로리를 기준으로 기아 상태에 처해 있다. 세상이 발전하고 있다면 이 인구는 점차 줄어야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2030∼2040년 사이에 오히려 20억명에 육박하게 된다. UN도시관측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2020년이 되면 “전 세계 도시 빈민이 전체 도시 주민의 45∼50%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슬럼이 준슬럼화되고, 준슬럼이 다시 슈퍼 슬림화되는 것, 이것이 도시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슬럼화의 고통은 슬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상상 초월의 고통이다.

슬럼의 형성 지대는 최악의 거주장소다. 세계 최악의 풍수(風水)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의 ‘비야미세리아’ 주민들이 사는 곳은 바닥난 호수, 쓰레기장, 공동묘지 등으로 이루어진 범람지대로 해마다 집들이 통째로 홍수에 쓸려가기 때문에 가재도구마다 자기 대문번호를 일일이 새겨놓아야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슬럼 지대는 습지, 범람지대, 쓰레기장, 화학폐기물 처리장, 철도변, 사막 가장자리를 개척한 곳이다.

상파울루의 ‘오염계곡’으로 불리는 쿠바탕에서 송유관이 폭발하는 사고로 인글 파벨라에서 500명 이상이 불에 타 죽었고, 멕시코시티의 산후아니코 지역에서는 액화 천연가스가 마치 원자폭탄같이 폭발하는 사건으로 무려 2000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수백 명이 자다가 목숨을 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죽었다. … 사람들은 불덩이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졌다. …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화염의 불빛이 이 처참한 광경을 대낮처럼 환히 비췄다.”

위생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케냐의 키베라에 위치한 라이니사바 슬럼은 1998년 4만명의 주민이 구덩이 변소 10개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타레 4A에서는 2만 8000명이 공중 화장실 2개를 함께 썼다. 이들은 배설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까운 지붕이나 골목으로 던지는데, 이로 인해 ‘날아다니는 화장실’ ‘스커드 미사일’이란 용어가 생겼다. 이것은 이들의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열 살짜리 꼬마들이 나이로비 통근자들에게 인분 덩어리를 휘두르며 돈을 요구한다. 인도의 방갈로르 슬럼에 사는 여성들은 씻거나 용변을 보기 위해 밤을 기다린다. 이들이 이용하는 지대는 습지대거나 들쥐 등의 설치류가 출몰하는 방치된 쓰레기장으로 이들은 밤에 용변을 보기 위해 낮에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슬럼에 산다는 것은 이렇듯 재난과 죽음, 그리고 질병과 동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지구적 슬럼화의 주범은 무엇인가. 저자는 엄청난 속도의 도시화를 추동하는 힘이 주범이며 또한 그 힘은 산업 발전으로 인한 고용 증대가 아니라 제3세계 채무위기와 뒤이은 IMF 주도 구조조정으로 불거졌다고 말한다. 즉 제3세계 농촌의 몰락, 워싱턴 정치경제 권력의 비대화, 경제의 비공식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의 요소들이 낳은 괴물이 바로 암울한 슬럼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특히 고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파국으로 가는 폭탄이다. 2002년 CIA는 “1990년대 후반 세계 노동력의 1/3에 해당하는 10억이라는 노동자가 실업·준실업 상태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누가 흡수하는가. 지하 경제의 정부 역할을 하는 무장 반군이나 범죄 조직들이다. 워싱턴의 군사기관들은 실제로 앞으로 전쟁이 점차 도심 슬럼에서 빈민들과 벌이는 유격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한국은) 한국 경제 영광의 30년 동안 충실한 납세와 사회 통합의 중간 역할로 국민 경제의 천사 노릇을 했던 중산층이, 아주 일부만 상류층의 경제 엘리트로 편입되고 대부분은 하층민으로 분리되는 변화를 겪는 중이다. 엘리트의 요새 주택은 이미 등장했고, 본격적인 슬럼이 등장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그리고 이 슬럼에 거주하게 될 사람들은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지 못할 지금의 십대들일 가능성이 높다. 슬럼이 등장하고 확대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성공회대 우석훈 교수의 말이다. 전 세계적 슬럼화가 가져올 위기와 절망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는 불과 1세기 만에 슬럼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미 세계화를 부르짖고 편입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1세기가 아니라 10년, 20년 내에 닥칠 심각한 위기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조건부 파국이라고 한다. 상황을 바꿀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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