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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시대…匠人가고 르네상스인 오라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5-05-19 09:09

《통섭-지식의 대통합》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558쪽/ 2만5000원

한 우물만 파는 장인이 대우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분야에만 매진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오늘날에도 당연히 전문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과거의 ‘한 우물’ 전문가와는 다르다. 전문가이되 다른 분야의 지식에도 능통한 인재, 즉 스페셜리스트이되 제너럴리스트가 오늘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및 실현방안’ 세미나에서 이우희 에스원 사장의 “경험·협력의 시대에서 창의·지식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발표는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기업이 요구하는 소위 팔방미인형 인재는 ‘르네상스인(Renaissance man)’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인은 여러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학자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전문가다운’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즉 르네상스의 학자들은 의학자이자 예술가, 동시에 해부학자, 철학자, 과학자였던 것이다. 오늘날 바라는 인재상의 조건이 어떻게 보면 바로 이 ‘르네상스인’의 그것과 같다.

르네상스인의 복귀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학문 분야에서도 르네상스 시대의 복귀가 논쟁이 되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사이에 놓인 거대한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 온 사회생물학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이 저술한 《통섭》(사이언스북스)은 인간이 쌓아올린 지식들이 본질적으로는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망 하에,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연구자들이 서로 협력해야 함을 주창하는 책이다.

이 책을 협소하게 보면 학문적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지식의 통합으로만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왜 현대인이 스페셜리스트이되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식의 통합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진리를 탐구하는 영역은 다양하게 세분화되었다. 철학, 역사학, 사회학, 의학, 물리학 등…. 그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더욱 분화·전문화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학문적 영역 및 경계는 올바른 것일까? 진리에 왜 경계가 있어야 할까?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러한 학문의 경계 및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인간이 편의대로 만든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서구 학문의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이러한 다양한 가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지들 속에 숨어 있는, 그렇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지식 통합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이를 통해 20세기의 물리학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통일된 연구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한 이해와 인간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21세기적 지식 혁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계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브라운 운동, 광전 효과, 특수 상대성 효과를 해명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고전 역학과 전자기학을 하나로 묶고, 고전 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에 다리를 놓아 ‘통합 물리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 기틀 위에서 20세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된 물리학 혁명이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다수의 진리가 존재하는가? 지식은 언제까지나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으로 나뉘어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영원히 각각의 진리 영역에만 예속되어 있을 것인가?”

저자의 결론은 이제 자연과학의 중요성과 그것을 사회과학과 인문학과의 통합을 그 어느 때보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동반자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식 체계의 기초를 다지는 통합이다. 그래야만 ‘인간 지성의 위대한 과업’이 계속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통섭은 ‘함께 넘나듦(jumping together)’이라는 뜻의 라틴어 ‘consiliere’에서 가져온 것으로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왜 지식을 통합해야 할까? 저자의 의도는 “통일된 연구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한 이해와 인간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21세기적 지식 혁명”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식의 통합이 학문 영역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식이 실생활, 즉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사회 영역과 무촌(無寸) 관계가 아닌 이상, 지식의 통합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통합과 확대를 포함한다. 쉽게 말해,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와 그것을 사용한 군인, 정치인들이 ‘한 우물’ 전문가를 뛰어넘는 ‘르네상스인’이었다면, 오늘날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인류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불행한 사건들을 떠올릴수록 ‘르네상스인’의 시대가 가까운 장래에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일까?

용어설명
통섭이란
통섭은 ‘함께 넘나듦(jumping together)’이라는 뜻의 라틴어 ‘consiliere’에서 가져온 것으로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www.summ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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