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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

[이코노믹리뷰 2007-04-28 22:36]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이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조선의 프로페셔널
안대희 지음/휴머니스트
2007년 4월/434쪽/1만9000원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주인공은 18세기 조선 사람들이다.
진정한 전문가를 보기 힘든 오늘날,
200년 전의 프로페셔널의 행적이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전문가인가 아니면 전문가인 척하는가?

예전에 읽은 만화책이 생각난다. 사람이 하늘을 날고, 손에서 광선이 나가는 팬터지 장르가 아니라, 오랜 기간 수련과 노력을 통해 무예의 고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아주 현실적인 만화다. 그 만화 내용 중에 중국의 한 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시절, 그 고수의 무예 입문은 화려하지 않았다. 큰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던 그의 사부는 그에게 한 가지 기초 기술을 가르쳐줬다. 한 발을 힘차게 내딛고 주먹을 앞으로 뻗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부가 오랜 기간 출타를 하게 되었다. 그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자기가 없는 동안 가르쳐 준 것을 열심히 수련할 것을 강조했다.

몇 년이 흘렀다. 그 몇 년 동안, 대부분의 제자들은 나태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한 사람만 그러지 않았다. 재능이 없던 바로 그 제자였다. 그는 다른 동문들이 그런 기초 기술을 어디에 써먹느냐고 비웃어도, 한시도 딴 눈을 팔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직 그 기술만 수련했다.

마침내 사부가 돌아온 날, 사부는 한 제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로 기초만 수련했던 그 제자였다. 사부의 눈에 그는 자신을 넘어선 고수였다. 사부의 눈을 의심한 다른 제자들은 그와 대련을 원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만 미친 듯이 수련한 결과, 어느 순간 그는 차원이 다른 고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방울의 낙수가 모이고 모여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든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 몰두하다보면, 익숙함과 동시에 요령이 생긴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일에 도통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일반인과 다른 차원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은 바로 그 차원에 이르렀으나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200년 전 10명의 프로페셔널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주인공은 18세기 조선 사람들이다. 유독 18세기에 이런 프로페셔널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이유는 ‘18세기에는 무엇엔가 한 가지에 미치는 것이 유행이었고, 전문가 집단인 중인계급이 당당히 자리를 잡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18세기에는 이들을 벽(癖)이나 광(狂) 혹은 치(痴)로 불렀다.

자,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중 한 명과 한번 만나보자.

오늘날 수억명의 동호인을 거느린 세계 바둑계의 최강국은 각종 기전(棋戰)에서 무패의 행진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 한국이다. 그렇다면 18세기 조선 최고의 바둑 고수는 누구였을까? 바로 ‘정운창’이란 사람이다. 조선 사회는 바둑을 몹시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여가에 즐기는 여기(餘技)나 소기(小技) 정도로 간주하는 이율배반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고수로 이름이 난 사람들은 고수대접을 받으며 명망을 얻었다.

정운창은 전남 보성 출신의 시골뜨기로, 무려 10년 동안 바깥출입을 삼가고 바둑을 공부했다. 문밖을 나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자고 먹는 것을 잊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에게 바둑을 처음 가르친 사촌 형이 “이보게 아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세상을 휘어잡기에 넉넉하다네”라고 말할 정도로, 정운창의 바둑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사촌형의 말대로, 보성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자, 정운창은 상경하여 전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가볍게 이겼다.

정운창이 당시 최고의 고수인 김종귀를 이기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당시 권력자들은 각 분야의 고수들을 휘하에 두고 그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김종귀는 당시 평양감사로 부임받은 한 고관을 따라 평양 감영에 머무르며 서울로 오는 걸 늦추고 있었다. 정운창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웅을 겨룰 사람이 없어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정운창은 그와의 대결을 꺼리던 김종귀와 대국하기 위해 평양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무려 8일 동안 김종귀가 있는 평양 감영 문밖에 앉아 그와의 대국을 시도했다.

결국 김종귀는, 김종귀가 아닌 사람으로 속이고 정운창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정운창이 이겨가자, 김종귀는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정운창은 자신이 두고 있는 그 사람이 김종귀인 것을 모르고, 김종귀에게 이렇게 말한다.

“댁은 김종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지금 김종귀는 어디에 있습니까?”

조선 시대는 신분 사회로 의식이나 지향이 획일적이며, 직업의 귀천도 분명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직업과 신분을 팽개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낯선 분야를 개척하여 전문가로 발돋움하기가 어려웠고 그러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집념이 필요했다. 정운창을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전문가들은 그러한 용기와 집념을 가진 사람들이다.

노새 한 마리, 보따리 하나, 이불 한 채로 덕유·속리·월출·지리·태백·소백·금강을 오른 정란, “짧은 인생, 쌀과 소금, 땔감과 기름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건 슬픈 일”이라며 밤 새워 시를 썼던 천민시인 이단전, 천하의 책은 모두 자신의 책이라며 천하 사람 가운데 자신이 책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조신선, 방 하나 가득 서양서를 모아두고 서양서가 있다면 고관집에라도 지름길로 달려갔던 조각각 정철조,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자존심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버린 최북 등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바로 자부심과 자의식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심,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오기가 그것이다.

진정한 전문가를 보기 힘든 오늘날, 200년 전의 프로페셔널의 행적이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전문가인가 아니면 전문가인 척하는가?’ 답이 후자인 경우라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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