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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 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코노믹리뷰 2007-04-12 13:30]


난세에 불어오는‘鄭風’
태풍의 눈인가, 찻잔속 태풍인가

‘경제 리더십’ 못지 않게‘교육 리더십’이 중요 이슈가 될 2007 대선. 정운찬 전 총장은 경제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갖고 있다. 게다가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충청권 출신이기도 하다. 이처럼 갖고 있는 카드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데….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학자지만 조실부모하고 조모 밑에서 어렵게 생장했다. 그의 생장과정을 보면 유방이나 조조에 가깝다

“서울대 총장 시절, 이명박 전 시장을 가끔 만난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결심해 뛰기 시작하면 결코 이 전 시장도 두렵지 않다”

이 번 대선에서는 ‘경제 리더십’ 못지 않게 ‘교육 리더십’이 중요이슈가 될 공산이 크다. 공교롭게도 정 전 총장은 경제학을 전공한 대학총장 출신이다. 그가 1% 안팎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시종 범여권의 제1순위 영입대상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관측통들은 정 전 총장의 강점으로 ‘교육 리더십’을 포함해 크게 3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첫째 경제전문가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최고의 엘리트 경제학자이다. 둘째 교육전문가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교육 리더십’이 중요이슈로 등장할 공산이 큰 만큼 국립서울대 총장을 지닌 그의 이력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정 전 총장으로서는 일종의 천시(天時)를 만난 셈이다. 셋째 충청출신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충청권의 향배는 승패의 관건이다. 충청 출신인 정 전 총장으로서는 지리(地利)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대권 향배 가를 충청권 출신
그렇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인화(人和)는 어떤 수준일까. 정 전 총장이 올해 초부터 범여권의 영입대상 1순위로 거론된 데에는 기본적으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정치자문역을 맡고 있는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그의 매력을 이같이 요약한 바 있다.

“첫째 그는 겸손하며 물욕이 없다. 둘째 주변이 깨끗하고 복잡하지 않다. 셋째 특정 이익집단과 무관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는 그를 위해 조건 없이 뛸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마당발’이 아니라 한번 맺은 인연을 깊고 길게 가져가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대권을 장악키 위해서는 현재 구축돼 있는 인화의 외연(外延)을 보다 확대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는 나름대로 인화의 기본 틀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범여권의 적잖은 사람들은 정 전 총장이 지니고 있는 이런 장점을 근거로 그를 향후 돌풍의 주역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 전 총장은 아직까지 정치참여에 관한 구체적인 속셈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범여권 인사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크게 2가지 차원으로 나눠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소위 ‘상이한 고건 학습효과’를 들 수 있다. 정 전 총장은 자신과 유사한 이미지를 지녔던 고 전 총리가 기존 정치권에 휘둘려 도중하차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범여권 인사들은 정 전 총장이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반짝 인기에 편승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볼멘 목소리로 “본인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밀어줄 것이 아니냐. 계속 뜸만 들이면 자칫 고 전 총리처럼 될 수 있다”는 협박에 가까운 불만을 털어놓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싶다.

다른 하나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대선전략’이다. 정 전 총장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정치구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강의에서 참여정부를 신랄하게 공격한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직도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운운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지나간 얘기일 뿐이다. 세계경제의 선두주자인 ‘강소국 대한민국’이라는 새 비전 앞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 연말 대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크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다.”

그는 ‘평화개혁세력’의 통합을 주장해 온 범여권은 물론 ‘산업화 세력’으로 대변되는 한나라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취지를 밝힌 셈이다. 범여권의 인사들에게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동행할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피력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범여권 인사들은 기존의 정치 틀을 유지한 가운데 반(反)한나라당 세력을 결집하면 능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정 전 총장의 기본구상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미 ‘무능한 진보’로 비판받고 있는 구여권의 인사들이 ‘반한나라당’을 내세우는 것은 명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역효과를 낼 우려마저 있다. 노 대통령의 색채를 완전히 탈색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여권이 ‘환골탈태’를 고창(高唱)하는 것은 자칫 유두분면(油頭粉面 :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얼굴에 분을 칠함)한 노기(老妓)의 호객행위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은 태생적으로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수파’가 버티고 있는 한 소위 ‘노무현당’으로 잔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정가 관측통들은 대략 1학기 강의가 끝나고 범여권의 이합집산이 일단락되어 정계개편의 큰 틀이 짜이는 6∼7월께 정 전 총장이 정치참여를 전격 선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에 전격적인 정치참여 선언이 나올 공산이 큰 셈이다. ‘정운찬 발’ 정계개편의 대지진을 예고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의 참여선언은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현재 그의 리더십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대선후보가 갖춰야 할 대중성과 인지도 등이 뒤떨어져 있고, 지나치게 순정(純正)을 강조한 나머지 대사를 그르칠 소지가 크다는 것 등이 그 이유이다. 한때 학자출신으로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이홍구와 이수성 전 총리의 실패 사례에 비춰볼 때 이들의 지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 전 총장은 학자출신의 정치 초년생에 가깝다. 더구나 그가 참여코자 하는 것은 총선도 아닌 대선이다. 원래 학자 출신에게 미덕으로 통하는 양심과 순수함은 천하를 놓고 다투는 축록쟁웅(逐鹿爭雄)의 대선전에서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긍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조그마한 일에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쉽게 의기소침해지기 때문이다. 《삼국연의》에 나오듯이 교전을 하기 전에 으레 유장(儒將) 출신 적장(敵將)을 인격적으로 매도하는 전술을 구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난세에 청류(淸流)를 자처하며 자긍심이 강한 인물일수록 조그마한 일로 인해 어이없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사서에는 이런 사실(史實)이 매거(枚擧)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실려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춘추시대 진헌공(晉獻公)의 태자인 신생(申生)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춘추좌전》‘노장공 28년’조에 따르면 진헌공은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부친의 첩인 제강(齊姜)과 간통하여 태자 신생을 낳았다. 얼마 후 진헌공은 융국(戎國)으로부터 두 여자를 맞이해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얻었다. 중이는 훗날 제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사상 2번째로 패자(覇者)가 된 진문공(晉文公)이다.

이후 진헌공은 또다시 여융(驪戎) 군주의 딸인 여희(驪姬)를 아내로 삼아 해제(奚齊)를 낳았다. 진헌공이 여희를 총애한 나머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인으로 삼자 여희는 이내 해제를 태자로 삼고자 했다. 당시 진헌공은 자색이 뛰어난 우인(優人:어릿광대) 시(施)를 총애했다. 그는 영리한 데다가 구변 또한 뛰어나 진헌공의 총애를 한 몸에 입었다. 이에 시는 마음대로 궁중출입을 하던 중 마침내 여희와도 사통케 되었다. 하루는 여희가 우인 시에게 물었다.

“내 아들을 태자로 세우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우인 시가 대답했다.

“먼저 태자 신생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신생은 사람이 성실하고 순수합니다. 또한 특별히 긍지가 높고 자중(自重)하여 차마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못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긍지가 높아 자중하는 사람은 너무 고지식한 나머지 스스로를 사지(死地)로 몰아가고, 차마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자책(自責)하기 마련입니다. 그를 불의(不義)한 사람으로 모욕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여희가 반문했다.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욕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욕하기 쉽습니다. 크게 모욕하면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의 명성에 심한 모욕을 가하면 그의 긍지와 자존심은 크게 손상받을 것입니다. 옛말에 ‘지나친 순수함은 우둔함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의 순수함은 그로 하여금 쉽게 모욕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의 자존심은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스스로 차단하고 말 것입니다.”

이에 여희는 우선 신생을 무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생이 여희의 무함으로 인해 죽게 되었을 때 주변에서 이같이 간했다.

“군주에게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만 합니다.”

신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 하면 여희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오. 게다가 군주는 이미 늙어 그런 일을 원치 않을 것이오. 나 또한 그리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소.”

“그렇다면 외국으로 망명할 것입니까.”

“군주가 아직 그 죄의 원인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있는데 죄를 뒤집어쓰고 외국으로 나간들 누가 나를 받아들이겠소.”

결국 신생은 목을 매 자진하고 말았다. 신생은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고 긍지가 높았다. 이런 사람은 모욕을 당하면 쉽게 좌절하고 만다. 궤계(詭計)가 난무하는 난세에는 시정(市井)에서 잔뼈가 굵은 잡인(雜人)에게 이용당할 소지가 큰 것이다. 조선조에서 남산골 선비들을 낮잡아 ‘샌님’ 내지 ‘딸깍발이’로 부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인 시가 ‘치욕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욕하기가 쉽고, 크게 모욕하면 자긍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자긍심이 강한 ‘샌님’과 ‘딸깍발이’의 최대 약점을 지적한 것이나 다름없다.

강한 자긍심이 최대 약점될 수도
조선조 철종(哲宗) 때 안동 김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하전(李昰銓)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원래 그는 헌종(憲宗)이 후사 없이 죽었을 때 왕족 중 가장 기개 있는 인물로 명망이 높아 유력한 후계자 물망에 올랐으나 안동 김씨의 견제로 낙마한 바 있었다. 당시 안동 김씨 세력은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과 完완창군(昌君)이시인(李時仁)의 아들인 이하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하응은 재주와 지략이 뛰어났음에도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무뢰한과 어울리며 탕자를 가장했다. 안동 김씨 세도가들은 그를 치지도외(置之度外)했다.

이에 반해 이하전은 시종 안동 김씨의 감시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긍심으로 인해 안동 김씨가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당시 그는 과시(科試)를 보면서 힘이 센 자를 데리고 들어가 안동 김씨 자재들과 다투는 우를 범했다. 그는 낭패를 당하자 이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과장 밖으로 나가 ‘하늘이여, 원통하다’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안동 김씨 세력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하전을 제거키 위해 혈안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하전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무고(誣告)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천하의 대권을 거머쥐고자 하는 사람에게 긍지 높은 자존심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소지가 큰 것이다. 초한전(楚漢戰) 때 누대의 명문가 출신인 항우(項羽)가 일개 농민 출신인 유방(劉邦)에게 패퇴하고, 삼국시대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청류 명문가 출신 원소(袁紹)가 탁류(濁流)의 본류인 환관 집안 출신 조조(曹操)에게 참패를 당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 전 총장은 항우·원소와 유방·조조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정 전 총장은 비록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딴 엘리트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까닭에 조모 밑에서 어렵게 생장했다. 그는 귀족적 이미지가 강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반박한 바 있다.

“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다.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평일에 밥을 먹은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죽과 수제비,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옥수수가루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의 생장과정을 보면 오히려 유방·조조에 가깝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간고(艱告)의 세월을 산 것이다. 그는 내심 자신을 대선레이스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한 고 전 총리 등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뒷받침한다.

“나는 과단성이 있는 사람이다. 승산 없는 싸움은 결코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자수성가한 그의 인생역정에 비춰볼 때 그의 말이 허투(虛套)로 들리지 않는다. 사실 대선에 임하는 그의 각오 또한 남다른 바가 있다. 그는 최근 <월간조선> 4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을 보는 자신의 생각을 이같이 밝혔다.

“서울대 총장 시절 이명박 전 시장을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결심해 일단 뛰기 시작하면 결코 이 전시장도 두렵지 않다.”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신중히 생각하되 일단 결단한 뒤에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평소의 행보가 약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런 행보는 기왕의 학자출신 대선 주자와는 현격히 다른 것이다. 현재 이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으나 이는 비정상적인 상황 하의 지지율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 정황에 비춰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최대 적은 바로 정 전 총장이 될 공산이 크다. 정 전 총장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과 현실에 괴리가 있는 건 사실이나 현실을 추상화한 이론은 튼튼하다. 이론을 튼튼히 하면 현실에 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경제는 단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장기도 있는 만큼 이론으로 잘 무장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넓고 길게 볼 수 있다.”

자신이 준비된 인물임을 은연 중 강조한 셈이다. ‘정풍(鄭風)’의 폭발력에 대한 관측통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으나 그의 정치참여 선언을 기점으로 정치권에 일대 폭풍이 몰아칠 공산이 크다. 관측통들은 장차 그가 막강한 ‘브레인 트러스트’를 형성해 현재 ‘제3지대’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와 함께 범여권 내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의 앞날은 서울대 총장과 탁월한 경제학자의 이력에서 우러나오는 ‘교육 리더십’과 ‘경제 리더십’을 얼마나 현실과 밀도 있게 접목시켜 나갈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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