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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 ⑤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이코노믹리뷰 2007-03-27 22:36] (고전전문가인 신동준씨가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손학규전 경기지사의 리더십 분석 칼럼입니다. )


飛龍의 고육책인가
보따리장수의 궁여지책인가

탈당이 과연‘비룡재천’의 고육책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궁여지책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행보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한나라당의 관계는‘계륵(鷄肋)’에 비유할 수 있다.
버리기는 아까우나 이내 버려도 아무 탈이 없는 관계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자랑하는‘빅3’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마침내 탈당을 결행했다. 나흘간에 걸친 ‘산사(山寺)구상’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를 혁파키 위한 ‘중도개혁’ 세력의 결집이다. 그는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탈당 기자회견에서 “현 상태로는 정당의 건강한 자기혁신과 미래지향적인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그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한나라당은 원래 민주화세력과 근대화세력이 30년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정당의 후신이지만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 14년 동안 몸을 담고 있었던 친정에 거친 독설(毒舌)을 퍼부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탈당행보를 두고 최근의 인기드라마 ‘주몽’을 예로 들어 주몽의 고구려 건국 행보에 비유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탈당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정치의 기본 틀을 바꾸는 데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탈당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중도개혁 세력 정치세력화 가능할까
그럼에도 정작 문제는 손 전 지사의 행보를 단순히 궁여지책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는 데 있다. 우선 그의 탈당을 계기로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반쪽짜리로 치러질 공산이 커졌다.

이는 한나라당의 집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도 한나라당은 압도적인 국민지지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빅2’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경선을 무사히 치를 경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아무리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단장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위기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손 전 지사가 기대하는 중도개혁 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탈당 직전에 손 전 지사는 국민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2위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크게 밀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일각에서 손 전 지사의 ‘리더십 부재’를 운위한 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그의 성향이 한나라당의 보수성향과 잘 부합하지 않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않다. 이는 최근 한 논객이 한나라당 내에 머물고 있던 손 전 지사를 두고 ‘금의야행(錦衣夜行)’으로 평가한 사실을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금의야행’은 말 그대로 ‘밤에 비단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로 원문에는 ‘의수야행(衣繡夜行)’으로 되어 있다.

일찍이 초한전(楚漢戰) 당시 항우는 유방에 앞서 진(秦)제국의 도성인 함양(咸陽)으로 쳐들어가 아방궁(阿房宮)을 비롯하여 모든 궁전을 불사른 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부하 한 사람이 이같이 간했다.

“이곳 진나라 땅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히고 땅이 기름지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잿더미로 변한 함양에 더 이상 머물기가 싫었던 항우는 속히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고 싶은 나머지 이같이 일갈했다.

“부귀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리하면 과연 그 누가 나를 알아 볼 수 있겠는가.”

《한서(漢書)》는 《사기》의 이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서 ‘의수(衣繡)’를 ‘의금(衣錦)’으로 바꿔 놓았다. 이것이 훗날 바뀌어 ‘금의야행’이라는 성어로 굳어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 있는 손 전 지사의 존재의미를‘금의야행’으로 표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머무는 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은 ‘금의야행’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의사인 셈이다.

원래 손 전 지사로서는 경선 룰에 대대적인 수술을 가하지 않는 영남을 중심으로 한 당내 보수세력의 협조를 기대키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10% 미만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손 전 지사는 이 전시장과 박 전 대표 등의 소위 ‘빅2’에게 결코 위협요인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가 ‘빅2’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빅2’의 입장에서 볼 때 손 전 지사를 자신들의 ‘러닝메이트’로 삼을 경우 보수세력의 표를 확고히 다진 가운데 중도세력의 표까지 유인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원래 손 전 지사는 비록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지지도 조사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전문가 그룹인 기자들과 중소기업인의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늘 1위를 차지해 왔다. 그는 비록 젊은 날에 극좌이론에 함몰된 것이 사실이나 훗날 이를 모두 학문과 경국(經國)의 이론으로 승화시킨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인에 가깝다. 그는 지난 2000년에 펴낸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에서 이같이 술회한 바 있다.

“나는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시절에 급진적인 이념과 사고를 지녔다. 정부홍보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경제도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망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정부가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독하고 처참한 사회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의 통치리더십과 관련한 혜안은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촛불시위에 참석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는 오히려 미군을 위문하러 간 대목에서 약여하게 드러나고 있다.

폭넓은 시야와 탁월한 분석능력을 겸비한 ‘안보리더십’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좌우를 넘나들며 다양한 삶을 체득한 손 전 지사의 역정을 고려할 때 그가 지닌 경륜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육자 집안 출신인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와 같은 귀족적인 냄새가 전혀 없다. 기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그를 두고 ‘꿈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인물’로 평가하며 선호하는 대선 주자 1위로 꼽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까운 장(場)을 찾아낼 경우 얼마든지 새로운 상황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엘리트지만 귀족적인 냄새는 안나
만일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 세력의 세 결집에 성공할 경우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보수-중도개혁-진보의 대결구도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이는 한나라당-중도개혁 세력 중심의 범여권-민주노동당 및 친노계열 간의 대결을 의미한다. 현재 적잖은 사람들은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을 기치로 제3의 길을 선택할 경우 중도를 선호하는 여러 세력들의 화학적 대결집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수뇌부가 손 전 지사의 이탈을 계기로 자칫 보수-중도개혁-진보의 대결구도가 형성될까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우려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지난 1997년의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조순 씨와의 통합을 계기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나 결전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박찬종 씨의 반발을 막지 못해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2002년의 대선에서 이 후보는 또다시 주변의 만류에 귀가 솔깃한 나머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포기함으로써 충청권의 이탈을 막지 못해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손 전 지사의 탈당 행보는 한나라당 수뇌부로 하여금 과거의 악몽을 상기토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엄밀히 볼 때 이번 대선 정국은 손 전 지사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삶이 이론과 실천, 보수와 개혁, 좌파와 우파, 이상과 현실, 지조와 타협이 하나로 통합돼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극히 낮지만 ‘중도개혁’의 상징으로 부상한 그가 흡인해낼 수 있는 잠재적인 지지층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이다. 그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손 전 지사와 한나라당의 결별은 일찍이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계륵(鷄肋)’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버리기는 아까우나 이내 버려도 아무 탈이 없는 관계를 뜻한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曹操)는 서촉(西蜀)의 유비(劉備)를 제압한 뒤 이내 서촉에서 발원하는 장강(長江)을 따라 강남으로 쳐내려가 손권(孫權)마저 굴복시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서촉의 관문인 한중(漢中)으로 쳐들어갔으나 의외로 유비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하자니 애석하기 그지없고,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전진하자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조는 이내 결단하여 한중의 군사를 모두 거두어 장안(長安)으로 철군키로 했다. 그는 드디어 철군의 결심이 서자 야간의 군호(軍號)를 ‘계륵’으로 정했다. 《삼국지》무제기(武帝紀)의 주(注)에 인용된 ‘구주춘추(九州春秋)’는 ‘계륵’이라는 군호가 결정된 당시의 배경을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위왕(魏王) 조조가 환군할 생각으로 군호를 ‘계륵’으로 정했다. 관속(官屬)들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이때 행군주부(行軍主簿) 양수(楊修)가 곧 행장을 수습해 돌아갈 준비를 하자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묻기를, ‘어떻게 환군할 것을 알았소’라고 했다. 이에 양수가 대답키를,‘무릇 계륵이란 것은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맛이 없는 것이오. 이는 한중을 비유한 것이오. 군호를 보고 대왕이 환군코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소’라고 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는 조조의 심중을 헤아린 양수가 이내 죽음을 당한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는 버리기 아까운 한중을 과감히 포기하고 철군을 결정했다. 그의 이런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손 전 지사 역시‘계륵’에 해당하는 한나라당을 과감히 이탈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손 전 지사에게 한나라당은 계륵?
그의 결단은 《주역》건괘(乾卦)의 구사(九四) 효사(爻辭)에 비춰볼 때 시의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주역》은 비룡(飛龍)이 되기 직전 단계에 있는 용이 모습을 ‘혹약재연(或躍在淵) 진무구(進无咎)’로 표현해 놓았다.

‘혹약재연’은 용이 연못 위로 뛰어오르거나 연못 속으로 물러나기를 거듭하면서 하늘로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연못 속으로 깊이 숨지도 못하는 불안한 상황을 지칭한 것이다. ‘진무구’는 전진을 결행해도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공자는 이같이 풀이했다.

“현자(賢者)의 지위가 오르내림이 무상한 것은 사악(邪惡)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퇴(進退)가 일정치 않은 것 또한 무리를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군자의 진덕수업(進德修業)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데 있다. 그래서 ‘무구’라고 한 것이다.”

‘혹약재연’의 ‘혹(或)’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래로 지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운데로 인간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을 말한 것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의혹(疑惑)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과 맺은‘계륵’의 관계는 바로 ‘혹약재연’에 비유할 수 있다. ‘진무구’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라도 험로(險路)를 걸을 수밖에 없으나 큰 허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래로 ‘비룡재천(飛龍在天)’으로 나아간 모든 인물은 결정적인 시기에 결단을 유예(猶豫)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주역》은 이를 ‘진무구’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비룡재천’을 꿈꾸고 있는 손 전 지사 역시 나름대로 ‘진무구’의 노선을 선택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진무구’를 선택한 자신의 심경을 이같이 밝힌 바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심정으로 새로운 정치질서 창조의 길에 저 자신을 던지고자 한다.”

이는 한나라당을 새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가 실패로 끝났음을 자인한 것인 동시에 새로운 정치질서의 구현을 위해 온 몸을 내던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탈당 직전에 언급한 ‘백천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이 말은 뜻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정진한다는 불가(佛家)의 화두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통상 ‘백척간두, 갱진일보(更進一步)’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미 충분히 향상했으나 다시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나아가다’의 뜻으로 불가 화두의 원의에 가깝다. 우리말의 ‘백척간두’가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로 올라가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과는 정반대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으나 단지 시기의 선택을 놓고 고민했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셈이 되었다.

현재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찬반여론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비룡재천’의 뜻을 세운 사람에게 탈당에 따른 비난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잠룡(潛龍)이 그 모습을 드러낸 현룡(見龍)이 된 뒤 ‘비룡’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은 법이다.

‘비룡재천’의 관건은 결정적인 시기에 결단을 내리는 데 있다. 결단을 유예할 경우 ‘비룡재천’의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일단 ‘비룡재천’의 기회를 잡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질서 실현 여부 미지수
현재로서는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가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이는 그가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조’를 화두로 내세운 사실을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겠다’며 기존의 정당과 정파를 ‘낡고 무능한 집단’으로 싸잡아 비판한 그가 그들에게 구애의 손짓을 보내는 것은 곧 탈당의 취지를 무색케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정황을 감안할 때 대략 그는 일단 시민사회세력과 손을 잡는 방식을 통해 중도개혁 세력의 입지를 서서히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탈당 직전에 중도개혁성향의 제3정치세력인 ‘전진코리아’의 창립대회에 참석해 “새로운 정치질서의 출현을 위해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역설한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새로운 정치질서’는 말할 것도 없이 중도개혁 세력의 대통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손 전 지사가 기대하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그의 구상대로 실현될지 여부를 점치기가 힘들다. 그가 ‘드림팀’의 일원으로 언급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모두 현재까지는 손 전 지사의 이런 구상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잠재적인 우군인 범여권의 반응이 환영일색인 것만도 아니다. 나아가 소위‘이인제 학습효과’등을 감안할 때 10% 미만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한 그의 탈당이 중도개혁 세력 결집의 기폭제로 작용키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 또한 만만치 않다.

그의 탈당이 과연‘비룡재천’의 고육책이 될지, 아니면‘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궁여지책이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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