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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NEXT 로컬(Local) | 2007.02.21 19:47 | Posted by 영환

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다시 한번 출사표 던진 비운의 천재 차지혁




[이코노믹리뷰 2005-05-26 10:15] (차지혁씨를 만나본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그와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어 , 차지혁씨가 아니신지요"  솔직히 저는 그를 사기꾼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그의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차씨의 진면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지요.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가지 점만은 명확하더군요.그가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우 선 구사하는 단어의 수준이 남다른 데가 있었어요. 뭐라고 할까요. 매우 정교하다고 할까요.

인터뷰 내내 신세한탄, 억울함을 털어놓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책을 2만권 읽었다는 그의 주장이 허풍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차씨는 여러차례 불만을 털어놓더군요. 자신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 그의 전화를 받았는 데, 다시 라면을 먹으려고 하니 퉁퉁 불어 도저히 입에 대지를 못하겠더군요. 차씨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토라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휴대폰 메시지와 함께 가수 이승철의 〈인연〉을 배경음악으로 띄워 보세요.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풍운아(風雲兒) 차지혁 씨(47)가 5년여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다시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999년 벤처기업 ‘미다스칸’을 설립하고 비상(飛上)을 꿈꾸다 사기공모 등의 혐의로 날개가 꺾이며 오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그의 복귀 일성(一聲)은, 뜻밖에도 휴대폰 부가 서비스인‘컬트링’이었다. 신세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컬러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신(新)개념 서비스라는 게 그의 설명.


지난 17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개인 사무실(지인 회사의 사무실 한켠을 빌려 쓰고 있다)에서 만난 차씨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지난 5년간 치열한 반성과 더불어 뼈를 깎는 자기 개발 노력을 거듭해 왔다고 고백했다. 초췌한 얼굴에 움푹 들어간 눈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보낸 풍상의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다.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조그만 골방에 묻혀 사업 구상과 연구에 골몰하다 보면 간혹 과거 교도소 생활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차씨가 이 기간 동안 출원하거나 등록한 특허 건수만 무려 100여 건. 이 특허를 활용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작품이 휴대폰 부가서비스인 ‘컬트링’인 셈이다.


지난 1990년 단돈 2만3000원의 자본금으로 자동차 관리업체 ‘트리피아’를 설립해 그 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차씨의 화려한 이력 탓일까? 기자는 그에게 “휴대폰 부가 서비스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기존의 컬러링 서비스는 음성 통화 시장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컬트링은 서비스의 범위를 SMS, 무선 인터넷, 컬러링등 데이터 통신 시장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아직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그 누구도 개척해보지 못한 이른바‘블루오션(Blue Ocean)’시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문자 메시지 비용만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배경 음악과 함께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나 장윤정의 〈어머나!〉등을 배경 음악으로 지정해 함께 보낼 수 있다. 메시지 사연을 읽다 보면 전송자가 지정한 음악이 동시에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게 된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특히 음악을 듣거나, 다른 문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굳이 휴대 전화를 확인하지 않고도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컴퓨터 화면 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업무시간 대부분을 보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메신저 상에서 바로 상대편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날릴 수도 있으며, 인터넷 전화 환경을 갖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메신저 상에서 바로 통화도 할 수 있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차씨는 조만간 이동통신 3사에 이러한 내용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실패한 벤처기업인 경험도 소중한 자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투자자를 울린 희대의 사기꾼, 21세기판 봉이 김선달, 대중선동에 능수능란한 한국의 히틀러. 사실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이라도 팔았지만, 저는 물건도 없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피해를 안겼다는 게 지난 92년 저를 심문한 젊은 검사의 말이었습니다.”


차씨는 92년 트리피아 부도 후 그를 심문하던 당시 20대 검사의 발언을 담담히 회고한다. 그는 지난 1999년 미다스칸 주식 공모 과정에서도 사기공모, 과대광고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어느덧 세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면서 그를 두고두고 고통스럽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격 복귀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은 “두려움 탓이 컸다”고 그는 고백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역사의 뒷 무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4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자신을 겨냥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에게도‘패자부활’의 기회를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머니게임을 하다 몰락한 벤처기업인인지, 아니면 치열하게 기술 개발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기업인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한 벤처 기업인들의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


차씨는 특히 과거 자신의 도덕성을 통째로 허물어뜨렸던 여직원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인터뷰 내용이 실린 월간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천 의원은 이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차씨의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기자는 차씨에게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자신의 주장대로 무죄라고 하더라도 그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지난 1999년 미다스칸 공모에 참가했던 투자자들의 명단이었다. “투자 판단에 따른 손실은 투자자들의 몫입니다. 법적인 책임에서는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추후 재기에 성공하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 척박한 토양의 국내 벤처 업계에도 훈훈한 전례를 세워나가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차씨는 지금도 사무실에 아침 6시면 출근해 새벽 2∼3시가 돼야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요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IQ 174의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차씨는 과거의 실패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조급증’ 탓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 캠프에서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을 조직하다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온 그는, 지난 13대 총선을 앞두고 후보 수십여 명의 선거 기획 의뢰를 수주하며 정치권에서 상종가를 기록한 바 있다.


그가 훗날 벤처기업 설립과정에서 발휘한 기획 능력도, 이때의 경험이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이러한 성공이, 자신을 주변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으로 변모시킨 것 같다고 차씨는 고백했다. 그는 이제 인내의 미덕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끈질긴 견제를 극복하고, 훗날 ‘미가와’ 시대를 활짝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새가 울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그는, 지난 12일에는 지인들에게 빌린 도토리 79개로 사이월드에 자신만의 온라인 사무실(cyworld.nate.com/digitalboy)을 열어 1촌 맺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IQ 174의 천재…기다림의 미학 배웠다


차씨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에도 시내 곳곳에 단말기를 설치해 이를 통해 고객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가상백화점과, 돈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노머니 매직서비스’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역시 차지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명성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은 아닌 듯 했다. 그가 지난 2000년 저술한 《청년 차지혁 그 꿈과 야망은 늙지 않는다》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치질 치료 약재가 첨가된 화장지, 선적립 마일리지가 들어 있는 역발상 신용카드 운용시스템 등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이날 인터뷰 중 그가 즉흥적으로 제안한 ‘은행 매장을 활용한 상품 마케팅’도 이른바 차지혁식(式) 재기(才器)를 가늠하게 했다. 그가 제시한 은행 내 백화점 상품 매장 설치 아이디어를 보자. 백화점과 은행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백화점에서 한 주 동안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제품을 은행 점포에서도 판매한다는 게 골자다. 은행 방문객들은 송금. 환전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물건도 구입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지난 2000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회장을 만나 게임서비스와 온라인 쇼핑몰을 제안했는 데, 이 사장이 이를 거부했다는 비사(秘事)도 공개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인터넷 포털 업계의 판도가 변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차씨는 요즘 후속 사업 준비 작업에도 골몰하고 있다. 직장인과 어린이들을 겨냥한 경제 포털 사이트가 그가 준비 중인 회심의 카드이다. 어린이들이 주식 거래를 실연해볼 수 있고, 특히 직장인들도 이곳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고수들에게 주식 거래를 위탁할 수 있다고 일부 기능을 귀띔했다.


이 경제 포털사이트가 출범하면 국내 증권산업 분야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아울러 한 업체와 손잡고 유무선 도메인 표준화 작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다면 될성부른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재단 ‘꿈은 현실로’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 곳은 최고경영자의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모두 이를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 그가 인터뷰 막바지에 밝힌 포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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