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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도지

NEXT SENTENCE(명문)/NEXT TERMINOLOGY | 2011.12.21 16:52 | Posted by 영환
위원이 저술한 해국도지는 아편전쟁후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가장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백과전서이다.

아편무역에 대한 강경조치로 전쟁을 촉발한 임칙서는 위원과 절친한 친구였고, 1841년 아편전쟁에서 패해 귀양을 가던 임칙서는 자신이 몇년 동안 수집한 서양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위원에게 넘겨주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책을 펴내줄 것을 당부했다.

두 사람은 아편전쟁후 중국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은 서양세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비를 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확신했다.

위원이 3년에 걸쳐 50권의 대작으로 묶은 것이 바로 해국도지다. 1844년 50권이 출간됐고, 1847년 60권으로 증편된 후 계속 증보가 이뤄져 1852년에는 100권으로 완간됐다 .

두 사람이 이 책의 편찬에 공을 들인 것은 당시 청조정이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전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지식인들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의 무대가 된 광저우는 베이징에서 2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남쪽으로, 청나라 황실은 당시 체제를 유지한 채
영국과 화의교섭이 타결된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홍콩을 빼앗긴 난징조약을 만년화약이라 불렀을 정도다.

해국도지는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세계 각국의 역사지리정치경제문화군사 정보를 집대성한 백과전서로, 당시로는 최신 정보의 보고였다. 무엇보다, 단순한 백과사전이 아니라 동아시아 3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빈발하는 외세와 충돌에서 자주설을 잃지 않기 위해 교범으로 삼았던 이론무장의 교과서였다.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으로 실추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중화는 유가의 높은 도덕정신을 가진 우월적 존재여서  빌려와 약한 곳을 보충하면 능히 서양세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중체서용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해국도지는 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자양분이었다. 중세서용론은 일본에서는 화혼양재, 조선에서는 동도서기로 변주돼 나타났다.  중국의 중체서용론, 조선의 동도서기론이 일부 개화파 지식인 그룹이 제기한 소수의견 수준인 반면,
일본의 화혼양재는 조야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공론화돼었다.

해국도지의 자양분은 일본이 대부분 흡수했다. 페리제독 내항 뒤에는 일본에서 해국도지 열독 붐이 일어 불과 3년만에 번역서 21종이 나왔고, 미국에 한해 범위를 좁힌 정밀번역서도 8종이 나왔다. (원전: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상투를자른사무라이조선과일본의엇갈린운명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지은이 이광훈 (따뜻한손,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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