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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경영' 시동건 어윤대호…꿈은 이뤄질까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자세로 시장공략해 나갈 것"

【베트남 호치민 = 뉴시스】박영환 기자 = 베트남 호치민에는 두 얼굴이 공존한다. 슈퍼파워 미국과 맞서 승리한 강인한 전사의 나라, 그리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신흥시장의 맨얼굴이 그것이다. 지난 10일 오후, 시내 중심가인 사이공 센터로 통하는 도로변의 대형 건물 사이로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오성홍기'가 휘날린다.

명 품 매장도 줄을 잇는다. 프랑스인들이 벽돌까지 공수해 지은 식민 시절 건물들은 순식간에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 과거와 현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베트남 남부 도시 호치민에는 요즘 우리나라 금융지주사 수뇌부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도 이달 초 호치민 지점을 방문했다.

모든 경영자들의 고민은 ‘성장’이다. 임 사장도 그렇다. 우리나라 금융 시장은 포화 상태이다. 4대 금융지주사들이 앞 다퉈 해외시장 공략의 깃발을 높이 들며 아시아 경영의 시동을 걸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2008년 리먼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위험을 골고루 분산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더 커졌다.

KB 금융그룹 수뇌부가 응시하는 신흥 시장이 바로 '베트남'. 가까운 곳부터 공략하라는 '원교근공'에 충실한 선택이다.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은 문화적으로도 동질성이 있고, 북으로는 중국, 동으로는 캄보디아와 인접해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을 비롯한 이른바 아세안(ASEAN)의 중심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지 진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이다. '동나이' 공단은 한국기업들의 베트남 러시를 엿보는 창(窓)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무려 2000여개에 달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지난 2000년 초 만해도 봉제회사들을 비롯한 중소기업들이 베트남 진출의 주류를 이뤘다.

박연차 회장이 운영하는 태광실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회사들, 부영, 현대건설 등 건설 회사들도 현지 경영에 나섰다.

◇호치민 경영 시동건 KB금융

호치민 중심가의 금호아시아나 플라자 3층에 위치한 KB국민은행 '호치민 지점'은 '베트남 경영'의 전초기지이다. 그룹 수뇌부의 대 아시아 경영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있는 '아지트'이다.

KB 국민은행이 '호치민'에 사무소를 오픈한 때가 지난 2007년. 우여곡절도 많았다. 베트남 금융당국에 제출한 관련 서류만도 흔한 말로 트럭 여러 대 분량이다. 직원들의 경우 타향살이의 고통도 적지 않았다. 6월부터 베트남 공략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게 되는 호치민 지점은 내부 공사를 마치고 내달 개점식을 한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기자가 방문한 이 지점은 쾌적하고 무척 밝았다. 우리나라 명동 한복판에 있는 KB국민은행 매장을 그대로 호치민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KB국민은행 호치민 지점 승인의 숨은 주역이 조찬형 KB국민은행 호치민 지점장이다.

허리는 훌쭉하고, 피부는 새까만 그의 외모에서는 지난 4년간의 세월이 묻어난다. 점심시간 도시락을 펼쳐놓고 수다를 떠는 베트남 현지 여직원들에게 농담을 건네는 조 지점장은 베트남 사람들과 닮아 있다.

KB국민은행 호치민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17명. 한국인 직원들이 4명이고, 나머지는 베트남 인들이다. 베트남 직원들은 대부분 뱅킹대학, 하노이대학을 비롯한 베트남 명문대 출신들이다.

◇현지 진출 한국기업부터 공략

"외모부터 현지화에 성공했다"며 웃는 조 지점장이 바라보는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자, 포탄이 난무하는 격전지다. 시장 진입이 다소 늦은 것이 부담거리이다.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는 KB국민은행의 경우, 경쟁사들에 비해 해외 시장 공략이 다소 늦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조 지점장이 받아든 숙제다.

베트남 토종은행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사콤 뱅크, 애그리 뱅크, 시뱅크를 비롯한 베트남 토종 은행들도 허투루 보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러한 토종은행들이 무려 40여개에 달한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토종은행들은 최근 수년간 지점망을 촘촘히 구축하며 마치 프랑스군을 몰아붙이 듯 외국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호 주의 안즈(ANZ),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를 비롯한 글로벌 은행들은 더욱 버거운 상대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강세를 띠는 일본계 은행들도 요주의 대상이다. 베트남 금융 당국의 규제도 부담거리다. 인플레이션 잡기에 '올인'하고 있는 베트남 금융당국은 돈줄을 바짝 조이고 있다.

조 지점장이 '장밋빛 전망'보다, 후발주자로서 '소임'의 무거움을 토로하는 배경이다. 사회주의 국가여서 땅의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도 시장 공략의 걸림돌이다. 토종 기업들을 상대로 대출을 해주고 땅을 담보로 잡기가 힘든 구도이다. 소매 금융시장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이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부터 공략한 뒤, 자사가 강점이 있는 소매금융시장으로도 활동 무대를 넓혀나가겠다는 로드맵이다. 당장은 시장공략에 따르는 고통이 따를지 몰라도, 베트남 시장은 장기적으로 전망이 밝다는 것이 조 지점장의 진단이다.

그 가 보는 베트남 시장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독특한 형태의 소형 은행 점포들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토종 은행들이 운용하는 출장소 형태의 매장들이 그것이다. 갈수록 은행 점포의 생산성이 떨어져 고민하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베트남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투는 '경연장'이다.

◇ 베트남은 '아이디어' 수혈의 장

지 난 4일 오전 11시, 하노이 시내는 소규모 은행 점포들의 물결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미니 출장소'에 해당한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귀띔이다. '맘앤 팝(mom and pop)' 스토어 형태의 이 소형 점포들은 베트남 은행들의 브랜드를 알리는 '안테나 숍'이자, '수신기반'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로컬 은행들은 이 소형 점포들을 그물망처럼 펼쳐놓고 자국민들을 포획한다. 하노이, 호치민을 비롯한 대도시의 목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이 소형 점포들이 있다. 글로벌 브랜드에 맞서는 베트남 현지 토종 은행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회심의 카드가 이 소형점포들이다.

최근 몇 년간 은행 점포는 물론 소형 출장소를 대폭 늘렸는데,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은행들도 이러한 매장 형태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장기적으로 베트남 기업 금융시장은 물론, 소매 금융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지주사들의 과제이다. 한국기업들을 상대로 한 기업금융시장은 레드오션화되고 있다.

호치민 지점은 신흥시장에서 움트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의 장이다. 신흥시장의 토종 은행들은 현지 소비자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이들의 대고객 접점인 매장 형태 등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KB금융지주도 어윤대 회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대학가에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베트남 '현재'가 아닌 '미래'봐야

조 지점장은 베트남 시장의 미래에 대해 낙관한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편이고, 인구(9000만)가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는 회의론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지만, 초강대국 미국과 대결해 승리한 유일한 이 국가의 성장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인구학적 자료를 봐도 그렇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20~30대 젊은 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실제로 하노이 도로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소형 매장들은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금융시장의 잠재력도 큰 편이다. 베트남 전체 인구 중에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비중이 20%정도에 불과하다. 아직은 현금자동인출기(ATM)기를 비롯한 금융서비스를 활용하는 인구의 비중이 낮지만, 그것이 장점이라는 것이 조 지점장의 분석이다. 시장이 빠른 속도로 팽창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조 지점장은 베트남에 지금부터 터를 잡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의 결실을 기다리기보다, 진득하게 저변을 닦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마부작침( 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든다'는 고사 성어는 KB금융지주의 베트남 전략을 엿보는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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