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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마라

NEXT 스트래터지(Strategy) | 2011.11.15 11:12 | Posted by 영환



미국이 베트남전에 휩쓸려 들어가고, 또 이 전쟁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면에는 린든 존슨, 맥나마라 콤비의 리더십 부재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황제 린든 존슨은 재상 맥나마라를 통해 전장의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며, 야전 사령관들의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고, 아시아의 소국 베트남전 패전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야 말았습니다. 


"로버트 맥나마라는 계량 분석에 대한 애정으로 유명했다. 포드사는 그 점을 높이 사서 포드 일가가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그를 회장에 임명할 정도였으나,불과 몇 주 뒤 존 F. 케네디가 그를 가로채서 국방장관 자리에 앉혔다.

맥나마라는 컴퓨터와 하버드MBA출신 인재들만 있다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전략실에서도 최적의 전략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프로젝트는 베트남전 당시에도 미군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도널드 럼스펠드안에 흐르고 있다.

맥나마라와 린든 존슨은 천생연분이었다. 케네디의 암살로 예기치않게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국정의 안정을 확보하고 싶어했고, 논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맥나마라는 전형적인 예스맨으로 고비마다 존슨을 안심시키고
단일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1964년 대선이 성큼 다가오자 존스은 맥나마라를 비롯한 고문 3명과 매주 화요일 오찬 회의를 가졌다. 그 자리에 합참의장은 물론 군 전문가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취임직후 존슨은 사사건건 내뜻을 거스른다며 군 보좌관 세명을 경질했다.

존슨과 그의 고문들은 베트남전을 존슨의 대선운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보탬이 될 수도 있는 정치적 풋볼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맥나마라는 각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의견을 표명할 경우 효과적인 정부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팀 플레이어를 원했다.

존슨은 반대의견을 필사적으로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유롭게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래야만 지나치게 좁은 선택의 폭 안에 갇히는 실수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모라라도 다른 관점을 지닌 고문 한명만 더 있었어도 존슨의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군은 맥나마라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다.

존슨은 자신의 정치 고문들과만 대화를 했고, 그의 결정들은 단기적인 정치적 성과와 궁극적인 군사적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 잘못된 의사결정은 팀전체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1963년 11월~1964년 7월, 존슨은 미국을 참전시킬 중대한 결정들을 내렸다.

훗날 이라크전의 상황은 반대 의견이 숨쉴 공간이 마련되고 나서야 비로소 변화되었고, 베트남의 경우는 끝끝내 그런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원전: 어댑트)"

어댑트불확실성을무기로활용하는힘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지은이 팀 하포드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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